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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문학회의 창립 과정

언어는 이 세상을 우리 자신에게 드러내게 하고, 우리 자신을 이 세상에 드러내게 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유용한 도구이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사고의 기본적 도구이고, 문화를 규정짓는 특성이며,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표지이다. 언어는 상상적 행위로서 우리들 각자의 상상과 경험에 대한 이미지를 우리의 마음속에 구성해 주는 수단이다.  작문은 문자 언어를 통하여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의사를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언어 사용 행위이다. 글을 잘 쓸 수 있는 능력은 학습을 위한 기본적인 기능임과 동시에 인간적이고 창조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인 능력이다.

작문 능력은 논리적이고도 창의적인 사고 능력, 합리적인 의사 결정 능력 및 문제 해결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고등 정신 능력이다. 작문 능력은 문자 언어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의 유창성, 아이디어 생성에 있어서의 유창성, 작문에 관한 일반적인 규칙 및 관습에 대한 통달, 글을 쓰는 상황을 적절히 고려할 수 있는 사회적 인지 능력, 우수한 글을 판단할 수 있는 감상력 및 비판력, 그리고 통합적 사고력 및 통찰력 등의 하위 기능으로 구성된다.

21세기의 사회에서 요구되는 작문 능력은 자신이 속한 사회문화 공동체 내에서 성공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현대 사회의 시민들은 작문 능력의 측면에서 다양한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생활 양식의 변화와 새로운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새롭고 상이한 의사소통 형식이 다양하고도 폭발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21세기의 학생들은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대단히 높은 수준의 복합적인 작문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작문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과 관심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그간 작문에 대한 연구가 각기 다른 분야에서 산발적으로 수행되었다. 그리하여 그 성과도 높지 못할 뿐 아니라 이론의 정립이 부진한 실정이었다. 더구나 1995년에 창립된 한국독서학회가 독서 현상에 대한 연구 활동을 지속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수행해 오고 있는 실정에서 한국작문학회 창립의 필요성이 더욱 크게 증대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412월부터 20055월까지 서울여대 박기석, 서울대 김종철, 홍익대 박영목 교수 등이 주축이 되어 한국작문학회의 창립을 위한 준비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200564일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제1회 연구발표회 및 창립총회를 개최함으로써 한국작문학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2023년 9월 1일 홍익대 명예교수 박영목)

 

 

사려 깊은 독자들로 넘실대는 사회 공동체를 위하여

박영목 (홍익대 사대 교수)

1. 한국독서학회의 창립 배경

1995년 4월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안병초 수사님께서 우리 집으로 전화를 주셨다. 강수길 선배님의 소개로 전화를 하게 되셨다는 말씀과 함께 독서 현상에 대한 이론적 연구와 실천적 연구를 체계적으로 해 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학회의 창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억난다. 1995년 당시까지 독서에 관한 이론적 연구와 실천적 연구는 국어교육학, 국어학, 국문학, 교육심리학, 출판학, 도서관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개별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연구자가 속해 있는 학문 공동체별로 독서 연구가 독자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독서 연구의 응집성과 통합성을 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서 학회 창립의 필요성에 관한 공감대가 독서 연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폭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1995년 5월 27일 안병초 수사님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독서학회 창립의 필요성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 20여명이 서울 마포구 망원동 소재 카톨릭 교육문화원에서 한국독서학회 창립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사무실을 카톨릭 교육문화원에 두기로 하였으며, 필자는 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 당시 안병초 수사님이 원장으로 계셨던 카톨릭 교육문화원에서는 수년간에 걸쳐 독서지도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연구를 해 왔는데, 학회 창립 및 운영에 필요한 장소 제공 및 사무 지원에 관한 협조를 하였다. 이러한 협조의 덕분으로 독서학회 창립 준비위원회에서는 총 7회에 걸쳐 준비 위원회 모임을 가지면서 학회의 조직, 회칙, 학회 창립 기념 학술 발표회 및 창립 총회 개최 계획 등에 관한 사항을 협의하였다.

안병초 수사님의 끊임없는 격려와 적극적인 협조에 힘입어 1995년 8월 9일 사학연금회관 세미나실에서 ‘독서 연구의 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하여 한국독서학회 창립 기념 학술 발표 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학술 발표대회에 이어 한국독서학회 창립 총회를 개최하여 한국독서학회가 창립되었다. 초대 회장으로 카돌릭대학교의 김봉군 교수님이 선출되었고, 부회장으로 필자와 노명완교수와 한철우 교수가 선임되었다. 2000년 8월부터는 필자가 회장직을 수행하여 왔고, 2003년 4월부터는 한국교원대학교의 한철우 교수가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독서학회에서는 지금까지 11회에 걸쳐 학술발표대회를 개최하였으며, 학회지인 ‘독서연구’를 8호까지 발행하여 왔다.

한국 독서학회는 지금까지 독서와 연관되는 제반현상을 조사 분석하고 이론을 정립함으로써 독서학의 발전에 주력하며 나아가 바람직한 독서 문화의 향상과 독서 환경의 조성 및 독서교육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를 위하여 한국독서학회에서는 독서와 관련한 조사연구사업, 학술발표회의 정기적인 개최, 학회지의 정기적인 발행, 독서 전문가를 관리하는 자격 규정 제정, 독서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연수 활동 지원 등의 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러한 사업들은 결국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사려 깊은 독자,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독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작은 도움이나마 제공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다음에서는 사려 깊은 독자의 특성과 독서 학습의 특성을 정리해 보고, 창의적 학습 능력 신장을 위한 독서지도 개선 방향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2. 사려 깊은 독자의 특성

학교 교육의 과정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창의적 사고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창의적 학습능력으로서의 독서 능력은 일련의 명시적 기능들의 집합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독서는 다양한 맥락과 다양한 목적으로 독자와 텍스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대단히 복잡한 과정이다. 독서의 과정은 텍스트에 제시된 정보와 독자가 보유하고 있는 기존 지식을 연결하여 독자 나름의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는, 창의적이고도 능동적인 사고 과정이다. 스키마 이론에 바탕을 독서 이론가들은 능숙한 독자의 독서 과정에 관한 연구, 능숙한 독자와 미숙한 독자를 구별짓는 요인에 관한 연구, 독서 능력을 효과적으로 신장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연구 등을 광범위하게 수행하였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가 지닌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텍스트의 의미 구성을 위한 배경지식의 적극적인 활용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는 텍스트의 의미를 구성하기 위하여 배경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독서의 과정에서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는 자신이 구성하는 의미 모형의 적절성을 평가하기 위하여 자신의 선행 지식을 활용한다. 또한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는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때에도, 텍스트의 내용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결정할 때에도, 독서의 과정에서 추론을 생성할 때에도 기존 지식을 활용한다. 독서 현상에 관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독서의 과정에서 새로운 정보는 그 정보와 연관되는 기존 지식과 통합될 때에 더욱 잘 학습되고 기억된다 (Anderson, Spiro, & Anderson, 1978).

(2) 독해 작용 조정과 수정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는 독서의 전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독해 작용을 조정한다. 조정하기는 의미를 구성하기 위하여 독자가 활용하는 핵심적인 사고 기제이다. 유능한 독자는 진행 중인 독해 작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지 의식적으로 확인하며, 일단 독해상의 문제에 직면하면 자신의 독해 전략을 수정한다. 반면에 미숙한 독자는 독해상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며, 설령 어떤 문제점을 발견하였다 할지라도 그 문제를 해결할 대안적인 독서 전략을 사용할 줄 모른다.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는 독해가 잘못된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면 자신의 독해작용을 수정한다. 독해작용에 대한 수정하기는 독서 과정에서의 규제(regulation) 전략, 수정(repair) 전략, 보완(fix-up) 전략 등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 독해 기능으로서 유능한 독자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기능이다. 일반적으로 사려 깊은 독자는 더 이상의 독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인식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안다. 사려 깊은 독자는 독해 과정에서 발생하게 될 문제를 예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취한다.

(3) 중요한 정보의 체계적인 선정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는 자신이 읽고 있는 텍스트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결정할 수 있다. 독해의 과정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결정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독해 과정에서의 주요 정보와 연관되는 용어들로서 요지(gist), 중심내용(main idea), 화제(topic), 대단위 구조(macro structure), 최상위 구조(super structure), 핵심어(key word), 주제(theme) 등을 들 수 있다. 독해 과정에서의 주요 정보는 독자중심 주요 정보와 필자중심 주요 정보로 구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는 독서의 과정에서 자신의 독서 목적에 따라 무엇이 중요한 정보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는 미숙한 독자에 비해 필자 중심의 주요 정보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는 텍스트의 주요 정보를 결정하기 위하여 세상사에 관한 일반적 지식과 내용 영역별 특수 지식을 활용한다. 또한,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는 주요 정보를 식별하고 조직하기 위하여 텍스트 구조에 관한 지식을 십분 활용하며, 내용의 중요성을 결정하기 위하여 필자의 의도와 목적과 편견에 관한 지식을 활용할 줄 안다.

(4) 글에 제시된 정보의 체계적인 종합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는 독서의 과정에서 정보를 체계적으로 종합한다. 정보의 종합 능력은 정보의 중요성을 결정하는 능력과 연관을 맺는 중요한 독서 능력이다.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는 텍스트를 요약하기 위하여 텍스트 내 정보는 물론 텍스트 간 정보를 종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텍스트에 제시된 정보를 종합하여 요약하는 과정에서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는 무관한 정보 삭제하기, 잉여적인 정보를 삭제하기, 일련의 사물이나 사건에 대하여 상위 개념어를 사용하여 적절한 표지를 붙이기, 각 문단의 중심 문장을 찾아 그 내용을 요약에 포함시키기, 문단의 중심 문장을 찾을 수 없을 경우에는 독자 스스로 중심 문장을 적절하게 만들어서 요약에 포함시키기 등의 전략을 적절하게 사용한다.

(5) 지속적인 추론의 생성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는 독서의 과정에서는 물론 독서 후에도 끊임없이 추론을 생성한다. 추론하기는 독해의 과정에서 독자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핵심적인 독해 기능이다. 흔히 추론하기 학습은 자구적 독해 기능을 숙달한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독서 지도에 관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최소한 초등학교 2학년의 독서 학습에서부터 강조되어야 한다. 추론하기의 과정에서 독자의 스키마(Schema)는 단편적인 정보에 부합되는 의미 구조를 형성하게 해 준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그 의미 구조를 활용하여 텍스트에 명시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세부 정보를 생성하기도 하고, 텍스트에 제시된 정보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기도 한다.

(6) 적극적인 질문의 제기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는 독서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제기한다. 독서 지도의 과정에서 질문은 일반적으로 독서의 주체인 학생들이 스스로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효과적인 독서 지도를 위해서는 독서의 과정에서 학생들 스스로 질문을 제기하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독서의 과정에서 독자가 생성하는 고등 수준의 질문은 심층적인 독해로 유도할 뿐만 아니라 독해 능력과 학습 능력을 신장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독서 과정에서의 질문하기의 중요성에 대한 실증적 연구 결과에 의하면, 교사가 제기하는 질문에 답한 학생 집단에 비해 학생들 스스로 질문을 생성하고 답하게 한 학생 집단이 독해 성취도 검사에서 의미 있게 높은 성취를 보였다.

3. 창의적 학습 능력 신장을 위한 독서 학습의 특성

학교 현장의 교육 활동에 있어서 교사는 정형화된 지식의 전달자 역할만 하고, 학생은 굳어 있는 지식의 단순한 수용자 역할만을 할 때, 학생들은 학교 교육을 통하여 지식의 생산 능력과 활용 능력, 창의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 투철한 가치관과 건전한 인성 등을 결코 제대로 함양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최근 사회구성주의 독서 이론에서는 교과 학습 상황에서 협상을 통한 의미 구성 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창의적 학습 능력 신장을 위한 독서 학습은 개인적 현상임과 동시에 사회적 현상이다. 또한, 독서 학습은 인지적 작용임과 동시에 지식의 사회적 구성 작용이다. 이와 같은 특성을 지닌 독서 학습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독서 학습을 구성하는 주요 측면을 사회적 측면, 개인적 측면, 인지적 측면, 지식 구성 측면, 상위인지적 대화 측면 등으로 구분하여 독서 학습의 특성과 독서 활동 요인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1) 독서 학습의 사회적 측면

사회구성주의 학습 이론에서는 개인의 발달에 관한 사회적 기저를 중시한다 . 이 이론에 의하면, 학생들의 학습은 학생들보다 더 나은 식견을 갖춘 사람의 중재 작용으로 인하여 촉진된다. 중재자는 학습자의 경험을 해석하고, 학생들의 인지적 활동과 정의적 반응을 도와 준다. 독서 학습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중재작용의 적용 방식과 시점, 교사 안내 활동과 학생 주도 활동의 균형 유지 방식, 학생들의 성취에 대한 평가 방식 등을 결정하는 일이다.

독서 학습은 학생들이 독서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난관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습의 잠재적 자원으로서 다른 학생들과 교사를 관찰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될 때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안전성을 지닌 독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안전성에 대한 인식은 독서에 대한 탐구 활동의 기초가 된다. 학생들이 더욱 능동적이고 전략적인 독자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는 독서의 과정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학생들로부터 들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이 편안하고 안전한 상태에서 자신이 지닌 문제점을 토로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한다. 독서 활동과 독서 능력 향상에 대한 학생들의 동기는 학생들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과 동료 학생들의 정체성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독서 학습이 이루어지는 교실에서의 바람직한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교사가 중시해야 할 일에는 안전성과 적절성 판단, 독서력과 힘 사이의 관계 탐구, 책의 공유 및 토의 등이 있다. 안전성과 적절성 판단을 위한 활동의 예로서 학생들이 수업 중에 질문을 하거나 혼란을 겪을 때에 안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말하게 하기, 모든 학생들이 각자의 아이디어와 문제를 아무런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토론 규칙에 동의하게 하기, 학생들이 교실 학습에 몰두하는 데 있어서 안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이야기하기, 모든 학생들이 편안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학습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실의 규준에 동의하게 하기 등을 들 수 있다.

교사와 학생은 존중하는 마음과 협동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른 학생들의 독서 과정을 탐색하여야 한다. 이것은 성공적인 독서 학습의 조건을 형성하기 위한 열쇠가 된다. 학생들이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교실에서의 독서 활동에 임하고 각자 자신의 독서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공유하게 되면 교실 독서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에게 해석의 다양성과 심층성, 텍스트를 이해하는 관점 등에 관하여 중요한 자원을 제공하게 된다. 학생들은 저마다 다양한 배경지식과 경험 등의 측면에서 강점을 지닐 수 있다. 그리고 교사는 독서 전략, 텍스트와 연관되는 배경지식, 특정 유형의 텍스트에 대한 독서 경험 등의 측면에서 전문적 자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학생들이 독해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자원에 접근하기 위한 대표적인 활동으로 독서 과정에서의 문제 해결 전략 공유, 다른 사람의 독서 방법 관찰 및 내면화 등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독서 과정에서의 문제 해결 전략 공유를 위한 활동의 예로는 텍스트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발표하기, 텍스트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문제점에 대해 교사와 학생들은 어떻게 처리하는 지에 관한 경험을 공유하기, 어려운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전체 집단 혹은 소집단의 문제 해결식 토론 활동에 참여하기 등이 있다.

다른 사람의 독서 방법 관찰 및 내면화를 위한 활동의 예로는 서로 다른 독자들이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활용하는 서로 다른 유형의 배경지식과 경험을 알아보기, 그러한 배경지식과 경험이 텍스트를 이해하는 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기, 서로 다른 독자들이 소리내어 생각하고 텍스트에 반응하는 방식을 살피기, 서로 다른 독자들이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하여 활용하는 다양한 독서 전략을 살피기, 다른 독자들이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전략과 접근 방식을 자신이 직접 시도하기 등이 있다.

(2) 독서 학습의 개인적 측면

독서 학습의 개인적 측면은 개별 학생들의 독서에 대한 다양한 관계에 초점을 둔다. 교실 내에서의 독서 활동은 개별 학생들로 하여금 독자로서의 인식을 확고하게 해 주고, 학생들 자신의 목표와 동기, 기호, 희망, 잠재적 성장 가능성 등을 개발하고 정교하게 가다듬는 기능을 하게 된다. 개별 학생들이 독자로서의 확고한 인식을 가지게 됨에 따라 다양한 독서 과정, 텍스트에 대한 다양한 반응, 질문과 해석 등과 같은 교실 토론의 풍성한 내용을 제공함으로써 교실이라는 독서 공동체를 살찌우게 된다.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하여 다양한 상위인지 전략과 인지 전략을 활용하는 능력은 독서 의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학생들 스스로 자신을 미숙한 독자로 인식하고 좌절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 독서 활동에 몰두할 수 없게 되며, 자신의 독서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거부하게 된다.

독서 학습의 개인적 측면을 개발하기 위하여 교사와 학생들은 독자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개발하고, 자신의 독서 과정에 대한 깨어 있는 의식을 지니고, 높은 수준의 독서 기능을 습득하기 위한 난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새롭거나 생소한 텍스트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공동의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 스스로 자신을 미숙한 독자로 인식하는 경우, 독자로서의 정체성을 개발해 주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학생들로 하여금 독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활동의 예로는 자신의 독서 경험과 독서 이유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글을 쓰거나 발표하기, 자신의 독서 습관과 기호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글을 쓰거나 발표하기, 독서 능력 개발을 위한 목표 달성 정도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기 등을 들 수 있다.

자신감을 지니고 독서 활동을 즐기기 위해서는 더욱 사려 깊은 독자로 성장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 스스로 독서에 대한 자신감과 흥미를 잃게 되면 독서에서의 능숙성을 발휘하기가 매우 어렵다. 독자로서의 능숙성과 끈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모든 독자들은 누구나 평생에 걸쳐 독서 능숙성을 개발해 나갈 여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독서 능력 신장을 위한 사람들의 일생에 걸친 노력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을 찾아보기, 독자로서의 발전 과정을 스스로 점검해 보고 독서 활동에 대한 인내심을 길러 나가기, 혼란스럽거나 싫증이 나는 독서 자료를 끝까지 읽어보기 등의 활동이 필요하다.

(3) 독서 학습의 인지적 측면

독서 학습에 있어서 인지적 측면은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학생들의 총체적 인지 전략에 초점을 둔다. 1970년대 이후 사려 깊은 독자들이 활용하는 다양한 유형의 인지 전략들이 밝혀졌다. 독서 과정에서의 인지 전략에 관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들 전략들은 자신의 독서 과정에서 자동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에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이 교육을 통하여 이들 인지 전략들을 습득하여 자신의 독서 과정에서 이들 전략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되면 독서에 대한 자신감과 독해 과정에 대한 조정 능력을 갖게 된다.

텍스트의 상위 구조 파악 전략은 학생들로 하여금 텍스트에 대한 전반적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준다. 텍스트에 대한 전략적 접근은 학생들이 직면하게 되는 모호성과 혼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추론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게 히 준다. 그리고 이들 전략들은 학생들 스스로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는 텍스트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준다. 독서 과정에서의 인지전략에 대한 효과적인 학습을 위하여 교사는 적절한 모델이 되어 주어야 하고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 주어야 한다. 텍스트의 상위 구조 파악 전략의 습득을 위한 학습 활동에는 텍스트 전체에 대한 훑어 읽기와 찾아 읽기, 애매하거나 혼란스러운 부분을 점검하기, 혼란스러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하여 미리 읽기, 이해의 정도를 점검하기 위하여 텍스트에 대한 큰 그림, 즉 텍스트의 상위 구조 파악하기 등이 있다.

사려 깊은 독자는 텍스트를 이해하기 쉽게 작은 단위로 분석한다. 독해에 실패했을 경우 텍스트를 작은 단위로 분석하는 일은 매우 효과적인 독서 전략이다. 텍스트의 하위 구조 분석 전략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의미 있는 작은 단위로 분석하기, 독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텍스트 구조 지표를 식별하고 분석하기, 텍스트에 제시된 근거와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연결짓기 등의 활동이 필요하다.

사려 깊은 독자는 자신의 독서 과정을 조정하고, 독해의 정도를 점검한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독서 과정에서의 비판적 의식, 독해 과정의 조정 및 점검 능력은 학습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신장될 수 있다. 독해 과정의 조정 능력을 신장하기 위해서는 독해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기, 요약하기, 풀어서 설명하기, 질문하기를 통하여 이해의 정도를 확인하기, 독서의 과정에서 직면하는 애매성이나 혼란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결정하기 등의 활동이 필요하다.

독서의 과정에서 텍스트로부터 의미를 구성하기 위해서 독자는 독서 활동에 계속해서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학생들의 주의 집중 능력을 신장하기 위해 독서는 텍스트로부터 의미를 구성하는 능동적인 문제해결 과정이며, 독자의 지식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과정임을 학생들이 정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자신이 이해한 내용의 통합 전략과 정교화 전략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텍스트와 필자와 독자의 입장에 대해 질문하기, 텍스트의 본문 밖에 있는 주석이나 참고 자료 등을 통하여 텍스트의 내용 발표하기, 텍스트에 진술된 내용을 도식화하기, 텍스트의 내용과 자신의 경험 및 지식과 다른 텍스트의 내용 등을 연결짓기, 혼란스러운 부분을 다시 읽기, 텍스트 전체나 부분을 요약하거나 풀어서 설명하기, 은유나 유추를 통하여 텍스트의 주요 개념과 내용을 표상하기 등의 활동이 필요하다.

사려 깊은 독자는 자신의 독서 목적에 따라 독서 방법을 달리 한다. 독서 목적에 적합한 독서 방법을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접할 때마다 구체적인 독서 목적을 설정하기, 동일한 텍스트를 서로 다른 목적으로 읽어보기, 독서 목적에 따라 자신의 독서 과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보기, 독서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독서 과정을 적용해 보기 등의 활동이 필요하다.

독서 학습의 과정에서 학생들은 독서 과정을 조정하고 점검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연습하고, 독해 결과를 저장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독서 전략과 독서 발달을 평가하게 된다. 학생들은 또한 텍스트로부터 구성한 의미를 다른 학생들과 공유함과 아울러 독서 방식과 독서 전략 대한 각자의 의식이 어떻게 변하였는지에 관한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4) 독서 학습에 있어서의 지식 구성 측면

텍스트에 제시된 아이디어의 세계에 관한 지식, 텍스트의 조직 방식에 관한 지식, 텍스트에 나타난 사고 방식과 언어 사용 방식에 관한 지식 등은 독해 과정 자체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독서 행위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확충된다. 독서에 있어서의 능숙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학생들은 텍스트의 주제에 관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학생들은 텍스트에 제시된 아이디어와 자신의 기존 지식을 연결짓고 더욱 정교화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유형의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당 텍스트 장르의 관습과 필자가 제공하는 텍스트 표지에 대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어떤 학문 분야의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학생들은 해당 학문 분야의 특징적인 사고 양식과 독서 방식에 대한 지식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 내용에 관한 지식, 텍스트에 관한 지식, 학문 분야별 특징적인 사고 양식에 관한 지식 등은 독해 과정을 지원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사려 깊은 독자의 인지적 과정에 대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독자는 텍스트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독자 자신의 기존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사려 깊은 독자는 텍스트에 제시된 정보를 수동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와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의미를 구성하기 위하여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구조화된 지식, 즉 스키마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독서 학습의 과정에서 교사는 특정 텍스트에 적합한 스키마를 학생들이 활성화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해당 텍스트를 통하여 연관되는 지식과 경험의 망을 확충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지식 구조 즉 스키마의 활성화와 설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활동으로는 단일 텍스트에 의해 서로 다른 유형의 스키마가 유발될 수 있음을 인식하기, 특정 텍스트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개별 독자별로 적용하는 스키마에 대해 발표하기, 특정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적합한 스키마를 식별하기 등이 있다.

텍스트의 주제에 관한 선행지식을 많이 지니고 있는 학생들일수록 텍스트의 내용을 더욱 잘 이해하며 이해한 내용을 잘 기억하게 된다. 선행지식은 독해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에 독서 지도의 과정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선행지식을 갖도록 하는 일은 대단히 필요하다. 내용 혹은 주제 지식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에는 텍스트의 주제에 관한 지식과 정보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실시하고 생각을 공유하기, 주제에 관하여 대립되거나 상치되는 지식과 정보를 식별하기, 텍스트에 제시된 상황과 유사한 상황에 자신이 놓여 있다고 상상하기, 텍스트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어를 탐색하기, 텍스트를 읽기 전에 텍스트의 주제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정해 보기, 텍스트에 제시된 아이디어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을 비교하기 등이 있다.

사려 깊은 독자는 독해의 과정에서 텍스트의 주요 내용 파악하기 위하여 텍스트의 구조에 관한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미숙한 독자는 텍스트 구조에 대한 의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텍스트에 제시된 정보를 체계적으로 조직하거나 주요 내용을 요약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텍스트의 구조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특정 텍스트의 조직 방식을 식별하기, 유사한 종류의 텍스트를 활용하여 텍스트의 구조면에서 일정한 패턴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특정 유형의 텍스트에 사용된 언어 표현 방식을 식별하기, 텍스트의 유형별 조직 구조를 독해의 과정에서 활용하기, 텍스트 구조에 대한 스키마를 구성하기 위하여 제목, 소제목, 텍스트 보조 자료 등을 개관하기, 텍스트의 전개 방향을 나타내 주는 텍스트 표지 찾기, 독해의 과정에서 텍스트 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텍스트 내용의 전개 방향을 예견하기 등의 활동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학생들은 특정 학문 분야 혹은 교과의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그 학분 분야 혹은 교과의 특징적인 사고 양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학문 분야의 특징적인 사고 양식과 연관되는 지식은 특정의 사회적 맥락에서 개발되는 담화 형식을 생산하고 이해하는 능력과 직결된다. 사회심리학, 사회언어학, 인지 과학, 문화인류학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에 의하면 특정 텍스트에 대하여 사려 깊은 독자와 필자는 비단 읽기와 쓰기에 필요한 복합적 기능만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담화 공동체에 독자와 필자로서 참여하는 방식을 숙달한 사람이다.

교사는 자신이 속한 학문 공동체의 특징적인 사고 방식과 담화 관습에 관한 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교사는 학생들과의 토론을 통하여 자신이 속한 학문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특징적인 언어 사용 방식, 담화 관습, 탐구의 방식 등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학문 혹은 담화 공동체의 특성과 연관되는 지식의 개발을 위해서는 특정 텍스트의 필자가 텍스트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설정했음직한 목적을 식별하기, 특정 텍스트의 필자가 생각했음직한 예상 독자를 식별하기, 특정 텍스트가 특정 상황에서 어떠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식별하기, 구체적인 학문 분야의 특성을 드러내는 광범위한 질문, 목적, 사고 양식 등을 탐색하기, 특정 학문 분야에서 텍스트가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 탐색하기, 특정 학문 분야에서 사용되는 특징적인 언어 사용 방식을 식별하기 등의 활동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

(5) 독서 학습에 있어서의 상위인지적 대화

독서 학습의 과정에서 사회적 측면, 개인적 측면, 인지적 측면, 지식 구성 측면 등 네 측면을 통합하고 조정하고 교섭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정신작용이 바로 상위인지적 대화이다. 상위인지는 사고에 관한 사고, 즉 자신의 인지 과정과 결과 혹은 그와 연관되는 것들에 관하여 사고하는 방법에 관한 일종의 절차적 지식으로서 지식과 기능의 유연한 활용과 심층 학습의 핵심 요소가 된다.

상위인지적 대화는 독서 활동과 연관되는 사회적 환경 및 교실 자원, 인지 작용,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요구되는 지식의 유형 등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내적․외적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내적 대화는 독자 자신의 독서 과정, 독서 전략, 지식 자원, 동기, 텍스트와의 상호작용 및 정의적 반응 등에 대한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고, 외적 대화는 위의 사항들에 대한 지도 교사 및 동료 학생들과의 대화이다.

상위인지적 대화는 반성적 사고임과 동시에 회귀적 사고이다. 상위인지적 대화를 통하여 학생들은 독서의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텍스트로부터 의미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자신의 독서 전략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등을 음미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또한, 상위인지적 대화를 통하여 학생들은 독서의 사회적 측면, 개인적 측면, 인지적 측면, 지식 구성 측면들 사이를 연결지을 수 있게 된다.

 

4. 창의적 학습 능력 신장을 위한 독서지도 개선 방향

독서지도의 기본적인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고, 독서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높이고, 개인이나 집단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창의적 학습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독자로의 성장에 필요한 독서 전략과 독서 태도를 개발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독해는 독서 지도의 핵심적 요소이다. 독해 능력을 효과적으로 신장하기 위한 독서지도에서는 학생들의 기존 지식 활성화, 학생들의 독서 활동 안내, 능동적이고도 집중적인 읽기 활동의 강화, 텍스트에서 수집한 개념적 지식의 강화, 독서 과정에서의 반성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 활동의 강화, 다양한 주제에 대한 탐구 활동 유도 등이 핵심적인 활동이 되어야 한다. 이와 연관하여 창의적 학습 능력 신장을 위한 독서지도 개선 방향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1) 창의적 학습 능력 신장을 위한 교수학습 양식의 개선

창의적 학습 능력 신장을 위한 독서지도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서는 독서지도 교사의 교수학습 양식을 독서지도 교사의 교수학습 양식을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독서지도의 과정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교사의 교수학습 양식에는 계획하기, 동기 부여하기, 정보 공유하기, 학생들의 이해 정도 심화하기 등이 있다.

① 독서지도에 대한 계획

전통적으로 교사의 계획하기는 교수학습이 진행되기 이전에 완결되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새로운 관점에 의하면, 교사의 계획하기는 유동적이고 역동적인 특성을 지닌다. 독서지도의 과정에서 학생들은 교사가 미리 의도하거나 계획했던 의미와는 다른 의미를 구성할 수 있다. 교사가 의도했던 의미와 학생들이 실제로 구성한 의미 사이에 차이가 났을 때, 교사는 자신의 계획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독서지도의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호교섭적이고 회귀적인 조정작용은 학생들이 목표를 달성하거나 교사가 자신의 목표를 수정할 때까지 계속된다. 효과적인 독서지도를 위하여 교사는 학생들의 반응과 조정에 부응하여 자신의 계획을 적절하게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② 독서에 대한 동기 부여

학생들이 독서 활동에 자신감을 가지고 심취할 있는 독서 환경이 조성된다면 독서지도는 매우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학생들로 하여금 독서에 열중하게 하는 데 기여하는 두 가지 요인은 성취감과 유용성이다. 독서지도의 과정에서 학생들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교사는 근접 발달 영역 (zone of proximal development) 내에 있는 내용을 위주로 교수학습 활동을 하고, 학생들의 수준에 적합한 기대를 하고, 학생들이 학습에 대한 자기 조정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독서 전략의 유용성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는 문제의 독서 전략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언제 활용되어야 하는지를 교사가 명시적으로 설명해 줌으로써 증대된다.

③ 효율적인 독서를 위한 정보 공유

독서 지도 과정에서의 정보 공유는 학생들의 독서 전략에 대한 스키마를 확충하기 위해 대단히 필요한 활동이다. 정보의 공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의미 구성 과정에서의 조정하기 방법에 관한 스키마를 수업의 시작 부분에서 학생들에게 분명하게 심어 주는 일과 교사 자신이 모델이 되어 시범을 보여 주는 일이다. 조정하기에 대한 학생들의 스키마를 새롭게 형성해 주거나 잘못된 스키마를 교정하기 위해서 교사는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학생들은 그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의미 구성 전략에 관한 자기 나름대로의 스키마를 형성하는 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 시범보이기의 효율성 정도는 명시성, 유연성, 구체성 등의 세 가지 요인에 의하여 결정된다.

④ 이해 정도의 심화

학생들의 이해 정도를 심화하기 위해서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독서 전략을 적절하게 조정하고 중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학생들은 교수학습의 과정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독서 전략을 활용하여 그 정보를 나름대로 해석하게 된다. 학생들의 이해 정도는 독서에 관한 기존의 이해 정도와 교수학습의 명시성에 따라 좌우된다. 교수학습의 과정에서 학생들의 이해를 더욱 정교화하고 심화하기 위해서 교사는 학생들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해의 질을 평가함과 아울러 교수학습 내용과 방법을 조정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이해 결과를 재구조화할 수 있도록 정교한 정보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독서지도의 과정에서 교사는 의미 있는 학습을 위해 노력하고, 학생은 학습으로부터 의미를 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은 교수학습의 의미에 대하여 일종의 협상을 벌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협상이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교사는 학생들의 바람직한 이해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적절한 학습 과제와 활동을 선정하며 적절한 동기를 부여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주어진 학습 목표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 정도를 심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학생들은 독서에 관한 자신의 기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교수학습 과제와 교사가 제공하는 정보를 해석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학생들은 학습 과제와 정보를 더욱 정확하게 해석하여 의미를 구성하고 교사가 의도한 학습 목표에 근접할 수 있게 된다.

(2) 창의적 학습 능력 신장을 위한 독서지도 내용과 방법의 개선

독서지도 이론과 방법에 관한 기존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창의적 학습 능력 신장을 위한 독서지도의 내용과 방법의 개선은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① 독서 전략을 중시하는 독서지도

독서지도는 잘 가르칠 수 있고 잘 배울 수 있는 독서 전략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독서지도 교사는 학생들이 숙련된 독자로 점진적으로 발달해 가는 길고도 먼 길의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독서 전략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독서지도의 과정에서 한정된 시간에 지나치게 많은 지식과 기능을 가르치려 하다 보면 학생의 입장에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학습을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학생들이 실제의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빈번하게 적용할 수 있는 핵심적인 독서 전략을 중심으로 독서지도를 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학생들의 독서 능력은 일련의 명시적 기능들의 집합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독서지도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현상은 지식이나 기능의 축적이 아니라 의미 구성 방식에 관한 숙련성의 변화이다. 따라서 독서지도 교사는 자신의 주된 역할이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학생들의 유의미하고도 목적 지향적인 독서 활동을 조정하고 안내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독서 전략은 텍스트로부터 의미를 생성하기 위한 의식적인 계획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다분히 의도적인 특성을 지닌다. 또한 독서 전략은 당면한 독서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수정되기 때문에 유연성과 융통성을 지닌다. 능숙한 독자는 텍스트, 독서 과제, 독서 목적, 독서 결과 등에 대한 지각 방식에 따라 자신의 독서 전략을 유연하게 조정한다.

② 독서의 가치와 유용성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 제고

독서지도의 과정에서 독서의 가치와 유용성에 대한 학생들의 의식을 끊임없이 강화해 주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며, 학생들에게 배경지식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정보를 발견하고 새로운 이해를 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독서의 유용성과 가치에 대한 의식은 학생들의 실질적인 독서 체험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발달한다.

독서지도의 과정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독서 자료, 필자, 교사, 동료 학생, 동료 집단의 문화 등과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통하여 새로운 지식과 가치를 획득하고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현재의 지식과 가치를 재고하게 하는 등의 독서 환경을 조성해 주게 되면, 독서의 유용성과 가치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는 실질적으로 증진될 수 있다. 또한, 최선의 학습을 위해 학생들은 주어진 텍스트의 주제에 관한 기존 지식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고, 중재와 조정의 과정을 통하여 텍스트의 의미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독서의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독서 전략을 학생들이 습득할 수 있도록 교사는 적절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

③ 독서 과정에서의 상호작용 활동 강조

독서지도 교사는 독해와 독해지도가 상호작용적이고 상호교섭적인 과정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고, 학생들이 독서 전략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발판(scaffolding)을 제공해야 한다. 학생들이 텍스트를 읽고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은 보이지 않는 필자와 교사와 의미를 공유하고 보완하는 해석공동체로서의 동료 집단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단히 복잡한 협상의 과정이다. 독서지도의 과정 또한 학생과 교사와 동료 집단과 독서지도 상황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단히 복잡한 의미 협상의 과정이다.

독서지도 교사와 학생들은 독해 활동과 독해 학습 활동을 통하여 구성하는 의미를 공유하고 보완하는 방법에 관하여 적극적인 협동을 해야 한다. 학생들이 독서 전략을 언제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전에 교사는 유추, 명시적 단서, 정교화, 시범 등을 통하여 학생들에게 독서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발판을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 교사가 제공하는 이러한 발판은 독서전략에 대한 학생들의 조정 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점진적으로 제거되어야 한다. 또한, 독서지도 교사는 텍스트 전반에 관한 개념적 이해는 물론 독서 전략을 언제 어떻게 어디서 사용하는지에 관하여 학생들을 실질적으로 도와 주어야 한다.

④ 내용 교과의 독서지도 강화

내용 교과 영역에서의 독서 지도가 강화되어야 한다. 우리의 학교 상황에서 독서지도는 일반적으로 국어 교과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제7차 교육과정의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교과는 국어, 도덕, 사회, 수학, 과학, 실과(기술․가정), 체육, 음악, 미술, 외국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교과 중에서 도덕, 사회, 수학, 과학 등의 교과는 해당 학문 영역에서 제공하는 지식을 그 교과의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는 이들 교과를 편의상 내용 교과로 부르기로 한다.) 독서 능력은 곧 학습 능력이기 때문에 내용 교과의 교수학습 과정에서 독서지도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범교과적 작문지도 (writing across curriculum)와 함께 범교과적 독서지도 (reading across curriculum)가 여러 선진국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도 교과 내용의 심층적 학습을 가능케 하는 독서 활동의 중요한 역할 때문이다.

내용 교과의 교수학습 과정에서 교사의 일방적인 설명에 의한 개념과 원리의 학습에만 치중하게 되면 학생들은 그 교과 영역 내에서의 지식을, 자신의 기존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 연결짓거나 조직하여 살아있는 지식의 구조로 환원하는 능력을 제대로 습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학습 방법 면에서 교사의 설명에 대한 듣기 위주의 학습보다는 학생들의 능동적인 읽기가 병행되는 학습이 더욱 효과적이다. 따라서 내용 교과를 지도하는 교사는 교과 내용과 연관되는 독서 지도에 대하여 깊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내용 교과 영역의 독서지도에 있어서 교사가 해야 할 중요한 일로서 학생들에게 적합한 독서 자료의 선정, 독서 자료를 읽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의 사전 제공, 명료하고도 적절한 독서 목표의 설정 등을 들 수 있다. 내용 교과 영역의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요인은 텍스트의 특성, 독자의 특성, 독자의 독서 목적, 교사의 지도 행위 등이다.

학생들의 독서 수준에 적합한 독서 자료를 선정하여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일은 교사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학생들의 수준에 적합한 독서 자료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요인으로서 텍스트의 내용과 텍스트의 가독성을 들 수 있다. 내용 요인으로 교과 학습 내용과의 연관성, 학생들의 경험 세계화의 적합성 등을 들 수 있으며, 텍스트의 가독성 요인으로 텍스트 내용의 정교화 정도, 텍스트 내용들 사이의 긴밀한 연결성 정도, 독서 과정을 안내하는 정보의 제공 유무 등을 들 수 있다.

내용 교과의 독서 지도 과정에서 교사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 지식을 독서 활동 이전에 학생들에게 제공함과 아울러 독서 활동에 대한 학생들의 동기를 강화하고 유지해 줄 필요가 있다. 실증적인 연구 결과에 의하면 텍스트의 내용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진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사이에는 텍스트에 제시된 정보의 이해 정도 및 기억 정도에 있어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 또한, 독서지도의 과정에서 독서 자료의 내용과 연관하여 학생들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기존지식을 활성화해 줄 필요가 있다.

독서 활동에 대한 학생들의 동기를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적합한 독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독서 학습의 목표가 학생들에게 너무 쉽거나 어려우면 바람직한 학습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학생들에게 주어진 독서 과제가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것이면 학생들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노력을 하게 되며, 설령 목표를 성취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책임을 자신의 노력 부족 탓으로 돌리고 다른 독서 과제에 대해서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더욱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

⑤ 특별활동과 재량활동을 통한 독서지도의 활성화

교과 활동을 통한 독서지도와 함께 특별 활동 및 재량 활동을 통한 독서지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제7차 교육과정의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에는 연간 재량 활동 시간이 초등학교 68시간 (초등학교 1학년 60시간), 중학교 136시간, 고등학교 204시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재량 활동 중에서 창의적 재량 활동은 ‘학교의 독특한 교육적 필요, 학생의 요구 등에 따른 범교과 학습과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의 촉진’을 위하여 운영하도록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부, 1997). 이와 같은 제7차 교육과정의 편성 운영 지침에 가장 적합한 활동은 독서 활동이다. 재량 활동 시간을 이용한 독서지도를 위한 하나의 방안은 각 학교의 실정에 맞는 독서 교실을 운영하는 것이다.

독서 교실 운영을 통한 독서지도는 교과 학습 과정에서의 독서지도와 그 성격을 달리 해야 할 것이다. 각 교과는 교과 고유의 학습 목표와 학습 내용을 가지고 있다. 국어 교과에서는 독서 능력의 신장이 독서 지도의 주요 목표가 될 수 있으나 다른 교과에서는 독서 활동을 통한 학습 능력의 신장이 독서 지도의 주요 목표가 된다. 창의적 재량 활동 시간을 이용한 독서 지도는 교과 학습을 통한 독서지도가 갖는 이러한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독서 활동의 목적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독서의 목적은 지식과 정보의 획득, 교양과 인격의 수련, 즐거움의 향유 등으로 분류 할 수도 있으며, 독서 유형과 연계하여 지식과 정보의 획득, 개인적 성취감의 향유, 사회 공동체에의 참여, 직업적 전문성의 추구 등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독서 교실 운영을 통한 독서지도 과정에서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목적의 독서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특히 문학 작품 중심의 독서지도 활동을 효과적으로 해 나갈 수 있다.

문학 작품 중심의 독서지도 활동은 독서 능력을 효과적이고도 심층적으로 신장시킴과 아울러 윤리적, 미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측면에서의 바람직한 가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화시킬 수 있다. 학생들이 문학 작품을 통하여 올바른 가치관을 함양할 수 있는 방법은 대단히 많다. 문학 작품을 읽고 거기에 나타난 인간의 본성, 개인적 욕구와 사회적 욕구의 갈등,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의 삶의 모습 등과 같은 윤리적 문제에 대해 이해하고, 이해의 결과를 바탕으로 토론을 하거나 글을 쓸 수 있다. 문학 작품을 읽고 그 작품에서 파악할 수 있는 작가의 문체, 기지, 어감, 상징, 심상 등과 같은 미적 가치에 대해 이해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거나 글로 쓸 수 있다. 문화적 가치를 드러내는 문학 작품을 읽고, 그 작품 속에 드러난 시대, 사회, 민족 등의 문화적 가치를 이해하고, 이해한 내용을 발표하거나 글을 쓸 수도 있다. 사회적이거나 정치적 문제를 다룬 문학 작품을 읽고, 그 작품 속에 드러나 있는 시민 의식이나 정치 의식과 관련되는 사회적 정치적 가치를 이해하고,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토론하거나 글을 쓸 수도 있다.

문학 작품 중심의 독서 교실은 활발한 대화와 토론을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독서 교실 운영 프로그램 설계의 이론적 기저를 사회구성주의 학습 이론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사회구성주의 학습 이론에서는 개인의 발달에 관한 사회적 기저를 중시한다. 이 이론에 의하면, 학생들의 학습은 학생들보다 더 나은 식견을 갖춘 사람의 중재 작용으로 인하여 촉진된다. 중재자는 학습자의 경험을 해석하고, 학생들의 인지적 활동과 정의적 반응을 도와 준다. 독서 교실의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중재작용의 적용 방식과 시점, 교사 안내 활동과 학생 주도 활동의 균형 유지 방식, 학생들의 성취에 대한 평가 방식 등을 결정하는 일이다.

 

5. 사려 깊은 독자들로 넘실대는 사회 공동체를 위하여

독서는 고도의 지적 능력을 필요로 하는 대단히 복잡한 정신 작용이다. 독서는 교향악의 연주와도 같이 여러 가지 지적 기능들이 한데 어울려 통합적으로 작용하는 지적 활동이다. 또한, 독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현상으로 구성된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독서를 통하여 사람들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구성한다. 독서 능력은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임과 동시에 의미의 구성을 통하여 독자 나름대로의 세계를 창출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독서 능력은 가장 강력한 학습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 능력과 학습 능력의 밀접한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학교 현장에서는 학습 능력 신장을 위한 독서 활동이 매우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독서 활동을 뒷받침해 줄 이론적 연구도 매우 부족한 편이다. 독서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문식력의 개발을 독서지도의 주요 목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학문적 문식력을 개발하는 일은 곧 앞으로의 학교 교육 및 사회 생활 과정에서 직면하게 될 여러 학문 분야의 다양한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독서 능력과 독자로서의 자신감을 신장하는 일과 직결된다. 학문적 문식력 개발을 위해 학생들은 독자로서의 특성과 정체성, 독서 과정에서 자신이 사용하는 독서 전략, 개인적 ․사회적 삶에 대한 독서의 역할, 자신의 미래 생활에 대한 독서의 역할, 자신의 학문적 문식력 개발을 위한 구체적 목표 등에 대한 탐구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 또한, 인문․사회 분야, 매체 분야, 역사 분야, 과학 기술 분야, 문학 분야 등에 대한 독서 활동을 폭넓게 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우리의 사회공동체는 사려 깊은 독자들로 넘실대는 사회로 변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03년 4월 23일 ‘안병초 수사님 고희 기념 논총’ 원고)


 

漢字敎育의 效果

朴泳穆 (국어교육과 23회, 홍익대 명예교수)

난대 이응백 선생님께서는 한자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과 철학을 지니신 분이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 실시와 국어 교과서에서의 한자 혼용 표기를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셨다. 난대 선생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학교교육이 기초 기본을 다져 그것을 사용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 생각할 때 국어 학습에서 한자야말로 절대적인 기초가 되는 것이며, 더구나 동양 문화권에서의 한자의 위치를 고려할 때 그것을 외면함으로써 초래되는 국제적 고립화는 중대한 국가적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셨다.

해방 직후는 초등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까지 한자를 사용하다가 ‘초등 국어 교본’이 ‘초등 국어’로 바뀌면서 3학년 이하에서는 한자를 제거했었다. 그러다가 1964년 9월부터 1970년 3월까지는 초등학교 4학년 이상에 한자를 노출 혼용하였다. 그러던 것이 1970년 3월부터 1975년 2월까지는 고전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든 국어 교과서에서 한자를 모두 제거했었다. 그러다가 1975년 3월부터는 중학교 이상 국어 교과서에서 한자를 병용하여 현재에 이르렀다1) . 난대 선생님께서는 ‘한자를 교과서에 적절히 섞음으로써 문면이 입체화하여 읽기 쉽고 뜻이 분명하게 파악되는 장점을 지니고 있으니 그것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활용하는 것은 우리 어문의 질, 나아가서는 교육 전체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기 때문에 한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국어 교과서에는 노출 혼용하고, 다른 교과서에는 당분간 괄호 속에 사용해야 한다.’는 건의를 교육 정책 당국에 끊임없이 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한자교육의 효과와 연관되는 정책 연구를 다섯 차례에 걸쳐 수행하였다. 이들 연구 중에서 한 건의 연구에는 공동연구원의 자격으로 참여하였고2), 네 건의 연구에서는 연구책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난대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내가 연구책임자로서 연구를 수행하였던 네 건의 연구 결과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Ⅱ.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에 대한 선호도 조사 연구

본 연구3)의 설문 조사는 서울, 춘천, 청주, 광주, 부산의 5개 지역에 있는 학교를 한국겨육개발원 국어교육연구실 연구원이 직접 방문하여 실시하였다. 설문 조사를 담당한 연구원은 각 지역별로 2명씩 편성되었는데, 담당 연구원은 각 지역의 대학교 1개교, 고등학교 2개교, 초등학교 2 개교를 직접 방문하여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다. 설문 조사를 실시하기 전에 문교부에서는 조사 협조 요청 공문을 해당 교육위원회에 발송하였고, 연구원이 학교를 방문할 때에는 한구교육개발원의 협조 요청 공문을 지참하고 갔으며, 해당 학교에서는 이번 조사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었다. 각 지역별로 회수된 설문지 2884개는 연구자에 의한 검색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설문 문항의 항목에 대하여 두 가지 이상 반응한 설문지는 분석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에 관한 한국교육개발원 장기 연구 과제의 제2차년도(1989년) 연구에 해당하는 이 연구의 목적은 주로 교육적 측면에서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에 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선호도를 설문지 조사를 통하여 파악하는 데 있었다.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에 대한 선호도 조사 결과는 표기 형태에 따른 독서 및 작문의 실태, 한자 교육의 필요성 및 유용도, 한자 교육의 실시 시기 및 방법, 교과서의 표기 방법, 표기 정책 등 다섯 가지 측면에서 분석되었는데, 그 결과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상의 문자 생활에서 고등학생 및 대학생 집단은 한글 전용 표기 형태의 글을 주로 읽으며, 학부모 및 교사 집단은 한자 혼용 표기 형태의 글을 주로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연령이 높을수록 한자 혼용 표기 형태의 글을 선호하고, 연령이 낮을수록 한글 전용 표기 형태의 글을 선호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한글 전용의 확대 및 한자 사용 비율의 점진적 축소라는 일반적인 추세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자 혼용 표기 형태의 글에 대한 선호도는 학력이 높을수록, 글을 읽거나 써야 할 일이 많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한자 실력이 높은 수준에 있다고 인식하는 집단일수록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여자 집단에 비해 남자 집단의 경우가 한자 혼용 표기 형태의 글을 더욱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에서의 한자 교육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는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자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는 설문 대상 집단의 성격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났다. 학생 집단은 학부모 및 교사 집단에 비해 한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반응한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으며, 연령층이 낮은 집단일수록 연령층이 높은 집단에 비해 한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반응한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학교에서의 한자 교육이 일상생활에서 글을 읽고 쓰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느냐는 문제와 관련하여 학부모 및 교사 집단에서는 매우 도움이 된다고 반응한 비율이 가장 높은 반면에 고교생 및 대학생 집단에서 약간 도움이 된다고 반응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러한 결과는 한글 전용 표기 형태의 글을 선호하는 집단일수록 한자 교육의 유용성에 대한 인식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한자 교육의 유용도에 대한 인식은 연령층이 낮은 집단일수록 그리고 학력이 낮은 집단일수록 낮게 나타났다.

학교에서의 한자 교육 실시 시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실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비교적 많았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의 실시 시기 중 에서 학생 집단에서는 주로 중학교 1학년 때 부터 실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으며, 학부모 및 교사 집단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실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초등학교에서의 한자 교육 실시 방법과 관련하여 초등학교 학생들의 대부분은 정규 교과 시간 이외의 특활 시간 또는 자습 시간과 같은 특정 시간을 이용한 한자 학습 방법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교과서 표기는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학년의 교과목은 한자를 병기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으며, 한글 전용 표기로 하자는 의견이 두 번째로 많았다. 중학교 교과서 표기에 대하여는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하되 , 필요한 학년의 교과목은 한자를 병기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으며, 한자 병기를 원칙으로 하자 는 의견이 두 번째로 많았다. 고등학교 교과서 표기는 한자 병기를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학년의 교과목은 한자를 혼용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으며,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학년 의 교과목은 한자를 병기하자는 의견이 두 번째로 많았다.

각종 인쇄물에 대한 표기 정책은 필요에 따라 한글 전용이나 한자 혼용으로 하도록 자율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과 한글 전용을 적극 권장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한자에 대한 친숙도 및 경험의 정도가 높은 집단일수록 자율에 맡기는 방안에 대한 반응 비율이 높았으며, 그 정도가 낮은 집단일수록 한글 전용 권장 방안에 대한 반응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한글 전용 표기와 한자 혼용 표기에 대한 선호도 조사 연구의 결과가 시사해 주 는 바는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첫째, 한글 전용 표기와 한자 혼용 표기와 관련된 어문 교육 정책을 수립할 때에 는 다양한 집단의 요구를 폭넓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무릇 모든 교육 정책이 그러하듯이, 한글 전용 표기와 한자 혼용 표기와 관련된 어문 교육 정책은 이념적 측면, 사회적 측면, 교육적 측면 등과 관련된 여러 가지 변인들의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분석을 토대로 수립해야 할 것이다.

Ⅲ. 한글 전용 표기와 한자 혼용 표기가 독서 과정에 미치는 효과 실험 연구

본 연구4)는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에 관한 한국교육개발원 장기 연구 과제의 제3차년도(1990년) 연구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한글 전용 표기와 한자 혼용 표기가 독서 과정에 미치는 효과를 검증 하는 데 목적을 두고, 단어 인식 실험, 읽기 시간 실험, 문장 재인 실험, 단어 재인 실험, 텍스트 요약 실험을 실시하였다. 실험의 결과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단어 인식 실험을 위해 서울 시내 소재 1개 대학의 3학년 이상 학생들 중에서 전공 영역을 고려하여 50 명의 피험자를 모집하였다. 실험의 자극 자료로서 사용된 단어는 중학교,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사용된 한자어를 대상으로 하였다.피험자들에게 실시한 한자 지식 검사지는 예비검사를 거쳐 신뢰도와 타당도 검증을 마쳤다. 각 피험자는 개인별로 미리 약속된 시간에 실험실에 와서 실험에 참여하였다. 실험에 참여한 피험자들에게는 각각 소정의 실험 참여 수당이 지급되었으며, 실험은 연세대 심리학과의 심리실험실을 이용하였다. 실험에 사용된 장치 및 도구는Tachistoscope, Random-access Projector, Drivers, Ordinal Projector, Screen, Micro-computer 등이었다.

단어 인식에 있어, 한글 표기 단어가 한자 표기 단어보다 동일한 조건에서 정확도가 높게 나타났다. 단어 인식에 있어 동일한 조건에서 한자 친숙 집단이 한자 비친숙 집단에 비해 정확도가 높게 나타났다. 단어 인식의 정확도는 노출 시간역이 길어짐에 비례하여 증가하였다. 한자 표기 단어는 한글 표기 단어에 비하여 긴 노출 시간역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글 표기 단어는 26msc에서 93%의 정확도를 보인 데 반해 한자 표기 단어는 42msc에서 68.7%의 정확도를 보였다.

읽기 시간에 있어 한자 혼용 표기가 한글 전용 표기보다 읽는 데 시간이 더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자 지식의 정도가 읽기 시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한자 친숙 집단과 한자 비친숙 집단은 읽기 시간에 있어 의의 있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문장의 길이가 길고 내용 구조가 복잡할수록 읽기 시간이 길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글 전용 표기에 대한 집단 간의 읽기 시간의 차는 미미하고 통계적으로도 의의있게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반해 한자 혼용 표기 에 대한 읽기 시간은 한자 친숙 집단이 현저히 짧았다. 그리고 한자 혼용 표기에 대한 집단 간 읽기 시간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의의있게 나타났다.

문장 재인 실험에 있어 한자 혼용 표기 문장에 대한 재인율이 한글 전용 표기 문장에 대한 재인율보다 높게 나타났다. 한자 지식의 정도는 문장 재인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자 혼용 표기 문장과 한글 전용 표기 문장에 대한 집단 간의 재인율의 차이는 의의있게 나타나지 않았다. 즉 표기 형태에 관계없이 한자 지식의 정도는 문장 재인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어 재인 실험에 있어 한자 표기 단어에 대한 재인율이 한글 표기 단어에 대한 재인율보다 높게 나타났다.단어 재인율에 있어 한자 친숙 집단과 한자 비친숙 집단 간에 의의있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자 비친숙 집단에서는 한글 표기 단어에 비해 한자 표기 단어 재인율이 훨씬 높게 나타났고, 이는 통계적으로도 의의있게 나타났다. 그러나 한자 친숙 집단에서의 각 표기 형태에 대한 재인율의 차이 및 각 표기 형태에 대한 집단 간 재인율의 차이는 의의 있게 나타나지 않았다.

텍스트 요약 실험에서 표기 형태에 따른 내용 이해도의 차이나 집단에 따른 내용 이해도의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각 집단 내에서 표기 형태별 이해도의 차이도 의의있게 나타나지 않았으며, 각 표기 형태에 대한 집 단 간의 이해도의 차이도 의의있게 나타나지 않았다.

본 연구의 실험 결과를 통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첫째, 대상 독자가 학교 교육을 통해 한자 교육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받은 대학생 집단이고, 단어 인식 과정에서 해당 단어에 대한 의미 표상의 단계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지 않는 상태에서 성인 독자는 한글로 표기된 단어를 한자로 표기된 단어보다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둘째, 대상 독자가 대학생 집단이고, 내용의 이해 및 기억에 독서의 목적이 있는 경우, 성인 독자는 한글 전용 표기 문장을 한자 혼용 표기 문장보다 빨리 읽을 수 있다. 셋째, 읽기 시간이 동일하게 통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어진 문장을 가능한 한 빨리 읽고 나서 일정 시간이 경과한 다음 읽은 문장을 재인할 경우, 성인 독자는 한글 전용 표기 문장보다 한자 혼용 표기 문장을 더욱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넷째, 대상 독자가 배경 지식이 유사한 대학생 집단이고, 내용의 이해 및 기억에 독 목적을 두고, 읽기 시간을 동일하게 통제했을 때, 성인 독자는 한글 전용 텍스트 중에 있는 한글 표기 단어보다 한자 혼용 텍스트 중에 있는 한자 표기 단어를 더욱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다섯째, 성인 독자는 텍스트의 내용을 요약하는 데서는 표기 형태에 따른 의의있는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위의 시사점을 토대로 한글 전용 표기와 한자 혼용 표기 형태는 독서 과정 중 단어 인식, 단어 재인 등 하위 과정에서는 통계적으로 의의있는 차이를 보이지만, 텍스트의 내용을 이해하고 요약하는 상위 과정에서는 차이가 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Ⅳ.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이 국어능력에 미치는 효과 실험 연구

초등학교에서의 한자 교육이 국어 능력에 미치는 효과를 검증하기 위하여 본 연구5)에서는 다음과 같이 현장 실험 연구를 실시하였다. 실험 대상은 인천 소재 교육부 지정 연구학교인 간석 초등학교에서 3학년 5학년 두 개 학년 에서 각각 4개반을 무선으로 표집하여 실험반 4개반(3학년 5학년 각 2개반) 통제반 4개반(3학년 5학년 각 2개반)을 운영하였다. 본 연구에서의 공식적인 실험은 1991년 4월 29일부터 10주간에 걸쳐 수행되었다. 이 10 주간의 실험 기간 동안 연구자가 개발한 교사용·학생용 자료가 실험반, 통제반에서 사용되었고 연구자의 관찰 면담이 이루어졌다. 공식적인 실험이 1학기 말에 종료된 후, 2학기 동안에도 1학기 실험에 준하여 실험 학교 자체에서의 실험 연구가 계속되었다.

공식적인 실험에 쓰인 실험용 자료 중에서 학생용 자료로는 실험반의 교과서와 어휘 학습 프로그램, 통제반의 교과서와 어휘 학습 프로그램 등이 사용되었고, 교사용 자료로는 실험반과 통제반 각각의 교사용 지도서가 사용되었다. 실험 기간 동안 실험반 학생들은 한자 혼용 표기의 읽기 교과서를 사용하였다. 이 교과서는 기존의 읽기 교과서 단원 중 실험 기간 동안 학습하게 되는 10개 단원을 한자 혼용 표기로 만든 것이다. 본 연구에서 연구자가 개발한 어휘 학습 프로그램이 학생들에게 매 단원 가정 학습 과제로 부과되었다. 실험 기간 동안 통제반 학생들은 별도의 실험용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고 기존의 읽기 교과서를 그대로 사용하였다.본 연구의 실험 결과를 검증하기 위하여 연구자는 3회에 걸쳐 검사를 실시하였다(사전 검사 1회, 사후 검사 2회). 사용된 검사지는 모두 16종으로서 연구자가 개발하여 국어교육 전문가, 한자교육 전문가, 현장 교사와의 검토 협의를 거쳐 확정되었다.

본 연구는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에 관한 장기 연구 과제의 제4차년도(1991년) 연구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실시했을 때 국어 능력(읽기 능력, 쓰기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증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4월 29일부터 시작된 실험용 자료의 투입 결과를 검증하기 위하여 사전 검사와 제1회 사후 검사와 제2회 사후 검사를 실시하였다. 검사의 결과를 중심으로 실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휘력에 있어 3학년은 통제반이 실험반보다 높은 점수를 보였고, 5학년은 실험반, 통제반 사이에 의의있는 차이가 없었다. 이는 한자를 이용한 어휘 학습이 한자 지식이 거의 없는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3회에서 보인 실험반과 통제반 사이의 근소한 차이로 보아, 한자의 학습이 장기간 계속될 경우 실험반과 통제반 사이의 어휘력 차이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 이해력에 있어 3학년과 5학년 모두 집단 간에 의의있는 차이가 없었다. 이로 보아 한자 교육 유무나 의도적인 어휘 지도 프로그램의 투입 여부가 내용 이해력의 향상에 상대적으로 적은 영향밖에 미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실험용 자료의 투입으로 현격히 증가된 어휘력이 내 용 이해력의 신장에 직결되지 못한 것은 내용 이해를 위해 동원되어야 할 기능은 어휘력 이외에도 여러 가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읽기 능력에 있어 3학년의 경우 집단 간에 의의있는 차이가 있었다. 1회, 2회 검사에서는 통제반이 의의있게 높았으나 3회 검사에서는 집단 간에 차이가 없어졌다. 이로 보아 시간 이 경과했을 때 한자 교육 집단이 비한자 교육 집단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읽기 능력이 신장되는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본 연구의 실험 기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5학년의 경우 집단 간에 의의있는 차이가 3회에 걸친 검사 및 3회에 걸친 검사 의 평균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문장 수준의 쓰기 능력에 있어 3학년, 5학년 모두 시간에 따라 문장 수준의 쓰기 능력이 변화하는 양상이 집단 간에 차이가 없었다. 한자를 이용한 어휘 지도거나 한자를 이용하지 않은 어휘 지도거나 간에 제한된 양의 어휘 지도가 문장 수준의 쓰기 능력 신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텍스트 수준의 쓰기 능력에 있어 문장 수준에서의 쓰기 능력과 마찬가지로 3학년, 5학년에서 집단 간에 의의있는 차이가 없었다.

본 연구는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실시된 것으로서 초등학교에서의 한자 교육의 효과에 대해 제한된 결과만을 얻을 수 있었다.지금까지 본 연구부에서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결과를 살펴보면 양측 주장 중 어느 한편의 주장은 옳고 어느 한편의 주장은 틀렸다고 하는 이분법적 결론은 불가능하다. 초등학교에서의 한자 교육 여부로 초점이 모아진 이 논쟁이 쉽게 결말이 날 수 없음은 이 문제가 진위나 선악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선 가운데 최선을 택해야 하는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본 연구의 실험 결과를 통해 현재와 같은 국어 교과의 구조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교과서를 한자 혼용으로 표기하고, 국어 시간에 한자를 지도하는 것은 국어 교과에서 길러주고자 하는 언어 사용 기능의 신장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의 한자 교육이 읽기 능력 및 쓰기 능력에 미치는 효과가 짧은 시간 내에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것을 시사받을 수 있다. 읽기 능력 및 쓰기 능력은 여러 가지 유형의 지식과 기능들의 복합적인 상호 작용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한자와 관련되는 특정의 지식 요인을 갖추었다고 해서 읽기 능력 및 쓰기 능력의 신장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Ⅴ. 초등학교 한자교육 프로그램의 교육 효과 검증 연구

초등학교 한자교육 프로그램의 교육 효과 검증을 위하여 본 연구6)에서 실험반 학생들에게는 한자교육 프로그램을 투입하고 통제반 학생들에게는 별도의 어휘교육 프로그램을 투입하였다. 실험 대상 학생은 춘천교대 부속초등학교 3학년 2 개 반과 5학년 2 개 반 모두 118명이었다. 한자교육 프로그램과 어휘지도 프로그램을 투입하기 전인 2003년 8월 22일 실험반과 통제반 학생을 대상으로 사전 검사를 실시하였다. 한자교육 프로그램과 어휘지도 프로그램 투입 기간은 2003년 8월 말에서 11월 중순까지 10주간이었다.

한자교육 프로그램 투입이 어휘력 신장에 미치는 효과는 3학년과 5학년 모두 한자를 이용하여 어휘지도를 하는 방법에 비하여 한자를 이용하지 않고 어휘 지도를 하는 방법이 단기간의 어휘력 신장에 더욱 효과적으로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자교육 프로그램을 장기간 투입할 경우에는 어휘력 신장에 미치는 효과가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한자교육 프로그램 투입이 내용 이해력 신장에 미치는 효과는 3학년과 5 학년 모두 단기적 효과 면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한자를 이용한 단기간의 어휘 학습이 내용 이해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내용 이해력을 구성하는 요인에는 어휘력 외에도 글의 내용과 구조에 관한 배경지식과 함께 학생들의 독해전략 등 중요한 요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한자교육 프로그램 투입이 어휘 활용 능력 신장에 미치는 효과는 3학년과 5학년 모두 단기적 효과 면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한자를 이용한 단기간의 어휘 학습이 한자를 이용하지 않은 어휘 학습에 비하여 학생들의 문장 수준 쓰기에서의 어휘 활용 능력 신장에 크게 기여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해석된다. 한자를 이용한 단기간의 어휘 학습이 학생들의 어휘력 신장에 미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장 수준의 쓰기 능력 신장에 영향을 미치기는 사실상 어렵기 때문 이다.

한자교육 프로그램 투입이 문단 수준 쓰기 능력 신장에 미치는 효과는 집단별 검사별로 일관성 있게 나타났다. 3학년과 5학년 사후검사의 경우 통제집단의 문단 수준의 쓰기 능력 점수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 난 것은 사후 검사문항의 특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결과는 한자를 이용한 단기간의 어휘 학습이 한자를 이용하지 않은 어휘 학습에 비하여 학생들의 문단 수준의 쓰기 능력 신장에 크게 기여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해석된다. 한자를 이용한 단기간의 어휘 학습이 학생들의 어휘력 신장에 미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 단 수준의 쓰기 능력 신장에 영향을 미치기는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국어 어휘의 상당 부분은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한자교육의 문제는 어휘력 신장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독해 능력과 작문 능력의 신장을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어휘력의 신장은 국어교육뿐만 아니라 다른 교과의 교육에서도 가장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과제이다. 어휘력은 이해 능력과 표현 능력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어휘력은 독해 능력의 기초가 된다. 일반적으로 어휘 지식은 독해 점수 변인의 80% 정도를 설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초등학교 1학 년 때의 어휘력 검사 점수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독해력 점수의 30%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독서 활동과 연관하여 바람직한 문식적 환경에서 성장한 학생들은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 비해 어휘의 양적 측면에서 다섯 배에 달하는 어휘를 습득한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하여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에 관한 합리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 실시 문제는 옳고 그르고의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교육 효과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어 교과에서의 한자 지도는 어휘력 신장 교육의 일환으로 실시되도록 초등학교 한자교육 정책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초등학교 한지지도의 적용 범위를 다양화 하는 방향으로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정책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넷째, 초등학교에서의 효과적인 한자지도 방법을 다양하고도 풍부하게 개발하여 보급하는 일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정책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은 3학년부터 실시하는 방안을 정책 방향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한자교육의 실시에 대한 입장의 차이에 따라 한자교육의 효과에 대한 의견이 다를 수는 있겠으나, 한자교육의 실시 방법에 따라 한자 교육은 효과적인 어휘력 신장을 위한 수단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초등학교 한자교육 문제의 합리적 해결을 위한 접근 방안을 간단히 정리하여 제시해 보기로 한다. 첫째, 한자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대안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한자교육의 적용 범위를 명확하게 결정해야 한다. 둘째, 한자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대안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한자교육의 적용 대상을 합리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 한자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대안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한자교육의 적용 범위와 적용 대상에 적합한 효과적인 지도 방법이 개발되어야 한다. 넷째, 한자교육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최선의 지도 모형과 지도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 다섯째, 한자교육과 관련된 정부 정책을 합리적으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한자교육과 관련되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장기적이며 종단적인 실험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의 문제는 이념적 측면, 사회적 측면, 언어적 측면, 교육적 측면 등 여러 면에 걸쳐 관련된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연구나 정책 결정에서는 관련되는 다양한 측면에 대한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연구와 검토가 체계적이고도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자교육의 효과에 대하여 지금까지 내가 수행한 연구들은 하나같이 단편적이고 단기적인 연구들로서 연구 결과를 일반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연구들이다. 절차탁마의 정신으로 연구 역량을 최대한 함양하여 제대로 된 연구 결과를 난대 선생님께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쉽고 죄송하다.

*이 글은 난대 이응백 선생 추모 문집 '국어교육의 큰 스승'(2015년 12월, 한국문화사)에 게재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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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응백 (1988) 속국어교육사연구, 신구문화사 205-207.

2) 최현섭 박영목 노명완 최영환 정혜승 (2002) 초등학교 한자교육 문제에 대한 총체적 분석 연구 (교육인적자원부 교육정책연구 보고서 2002-특-12).

3) 박영목 권경안 (1989)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에 관한 선호도 조사 연구 (한국교육개발원 연구보고 RR89-19 1-115).

4) 박영목 손영애 (1990) 한글 전용 표기와 한자 혼용표기가 독서 과정에 미치는 효과 실험 연구 (한국교육개발원 연구보고 RR90-3 1-111).

5) 박영목 손영애 이삼형 (1991) 초등학교에서의 한자 교육이 국어능력 향상에 미치는 효과 실험 연구 ( 한국교육개발원 연구보고 RR91-20 1-199).

6) 박영목 이성영 신권식 이수인 (2003) 초등학교 한자교육 프로그램의 교육 효과 검증 연구 (교육인적자원부 2003년도 교육과정 후속 지원 연구과제 답신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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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 차 있는 것은 비어 있는 듯 보인다

                                                                              박영목 (홍익대 명예교수, 23)

나는 지금 영등포구 당산동에 살고 있다. 학교에서 출발하여 지하철로 두 정거장만 오면 바로 당산역이다. 당산역에서 집으로 오노라면 옛날 제효 선생님께서 사시던 동네를 지나치게 된다. 제효 선생님께서 사시던 강남맨션 아파트는 재건축되어 지금은 당산동 삼성래미안 아파트로 이름이 바뀌었다. 나는 늘 새로 지은 아파트를 올려다보면서 제효 선생님께서 사시던 동이 저기 어디쯤이겠지 하고 가늠을 해 보곤 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음력 정월 초가 되면 우리 1966 학번 국어교육과 동기들은 떼를 지어 은사님 집을 방문하여 세배를 드리곤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말이 세배이지 그야말로 작정하고 은사님 댁에 폐를 끼치는 일이었다. 제효 선생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참으로 인기가 많으셨다. 그리하여 정월 초의 제효 선생님 댁에는 제자들의 무리로 인하여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거실은 물론 자녀분들의 방에도 세배를 하러 온 제자들로 가득 찼었다.

내가 대학 1학년 때인 1966년에는 제효 선생님 강의를 듣지 못한 것 같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대학에 입학한 나는 내 자신의 처지와 미래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고민도 하고 방황도 하면서 대단히 암담한 심정으로 용두동 캠퍼스에서의 대학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나는 조금씩 학문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지니게 되었다. 뜻하였던 일을 실패한 후에 뚜렷한 대안이 없던 나로서는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는 일이었다. 그 당시 서울 사대 도서관에는 피바디 재단과의 협약 때문인지는 몰라도 언어학 분야의 양서들이 서울대 중앙도서관보다 훨씬 많았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나는 선농단 옆에 자리 잡은 신식 건물의 도서관에서 소쉬르, 블룸필드, 나이다, 사피어, 촘스키 등의 언어학 관련 서적을 무슨 한풀이 하듯이 집요하게 읽었었다.

나는 제효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참으로 답답해 한 적이 많았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질문을 드리면 명확하게 답변을 해 주시지 않고 글쎄라고 하시면서 자세한 설명을 피하기만 하셨다. 1960년대 중반에는 촘스키의 언어학 이론이 지배적인 언어학 이론으로 등장한 시기였다. 제효 선생님의 수업 시간에 의미에 관한 촘스키의 이론과 연관된 질문을 제효 선생님께 드렸는데 선생님께서는 내가 읽은 책의 내용과 대립되는 내용의 설명을 해 주셔서 나는 고집을 피우면서 선생님의 설명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1980년대 초에 일리노이 대학에서 인지심리학에 바탕을 둔 언어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비로소 제효 선생님의 설명이 참으로 타당하고도 심원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제효 선생님께서는 나의 학사 과정과 석사 과정 논문 지도 교수님이시었다. 나의 학사 학위 논문은 국어 용언 어간에 대한 형태론적 시고이고, 석사 학위 논문은 국어 사동사와 피동사의 의미 구조이다. 나는 석사 학위 논문으로 국어의 /주제화에 관한 연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문리대 국문과의 임홍빈 선생님께서 같은 주제로 먼저 석사학위 논문을 쓰시는 바람에 논제를 갑자기 바꾸어야만 하였다. 그 당시 의미에 대한 연구는 국어학 연구의 주변 분야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늦게나마 제효 선생님의 의미 연구에 대한 심원한 뜻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의미 구조에 대한 연구를 시도하였던 것이다.

그 당시 의미 연구의 중요성에 나의 인식은 내 석사 학위 논문의 다음과 같은 서론 부분에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 연구는 국어 사동사와 피동사의 의미 특성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하여 시작된다. 이 목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과 같은 세 개의 계층적 물음과 만나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의미 구조란 무엇인가? 동사의 의미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사동사와 피동사는 동사 전체의 의미 구조와 어떤 관련을 맺는가? 왜냐하면 의미 구조에 대한 인식은 동사의 의미 구조에 대한 인식을 보다 명백히 해 줄 것이며, 동사의 의미 구조에 대한 인식은 사동사와 피동사의 의미 구조를 밝히는 데 있어 어떤 통찰력을 부여해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언어, 그것은 신비 또는 미궁으로서 우리의 앞에 가로 놓여진다. 언어의 이 신비한 양상은 우리로 하여금 의미 구조에 대한 일정한 통찰력 없이는 언어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신념을 갖게 한다. 이러한 신념은 이 연구의 처음과 끝을 면면히 흐를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업무와 연관하여 내가 제효 선생님을 뵙게 된 것은 아마도 1978년 무렵일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1970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3년 동안의 군 복무를 마친 후 영훈중고와 동국대 사대 부고에서 5 년여의 국어과 교사 생활을 하면서 서울대 대학원 국어교육과에서 19782월에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19784월부터 문교부 국어심의회 상근 전문위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 당시 상근 전문위원실에는 지춘수 선생님과 서원임 선생님이 계셨는데 연구실의 위치는 지금 서울시 교육청의 뒤편에 있는 학교건강관리소 건물의 4층이었다.

19784월 당시 문교부 국어심의회 상근 전문위원실에서 지춘수 선생님께서는 한글맞춤법 업무를 담당하셨고, 서원임 선생님께서는 표준어 규정 업무를 담당하셨으며, 나는 외래어표기법과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업무를 담당하였다. 나는 김완진 선생님과 남기심 선생님을 모시고 외래어표기법의 세부 규정을 마련하기 위해 서린호텔 등에서 식사를 해가며 밤늦게까지 집중작업을 하곤 하였다. 전문위원실에서의 일과가 끝나면 나는 개발 초기의 청담동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광화문 네거리까지 걸어가는 도중에 광문사라는 서점에 들러서 언어학과 국어학 관련 서적을 구입하곤 하였다. 이 무렵에는 문법연구회를 중심으로 한 소장 문법학자들의 연구 활동이 매우 왕성한 시절이었다. 문교부 국어심의회 상근 전문위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 나는 늘 내 은사님이신 제효 선생님께 여러 가지로 자문을 구하였는데 선생님께서는 참으로 자상하게 여러 가지 대안을 마련해 주셨다.

19784월부터 문교부 국어심의회 상근 전문위원으로 일하던 나는 19795월부터 문교부 교육연구장학관실의 교육연구사로서 학교교육 정책에 관한 실무적인 업무를 담당하다가 1983년부터 국비 유학생의 신분으로 일리노이대학 대학원 교육심리학과의 박사 과정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의사소통 상의 문제를 극복하면서 수업 시간에 교수님의 강의를 따라잡기 위해 다른 학생들보다 갑절의 노력을 기울여 여러 권의 책과 논문을 미리 읽어 가느라 나는 숱한 밤을 도서관에서 지새워야 했다. 이러한 나로서는 토요일이야 말로 나의 아내와 두 자녀에게 위안을 주고 즐거움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천금처럼 소중한 요일이었다.

1980년대 초의 어배나 샘페인은 나에게 있어서 참으로 삭막하고도 밋밋한 도시였다. 도심지를 벗어나서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온통 밀밭과 콩밭뿐이었다. 한국에서 그리도 즐겨 찾았던 아기자기하고도 오색찬란한 산의 모습을 돈 주고도 구경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어배나 샘페인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일리노이 대학의 대학원은 미국 내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상위 수준의 대학이었으며 특히 인지심리학 분야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던 심리학과와 교육심리학과는 전국 서열 2위 안에 드는 유명 학과이었다. 내가 속해 있던 교육심리학과의 대학원 학생 수는 200명이 넘었으며, 나의 세부 전공인 교수학습에 관한 인지과학 전공 분야에서는 리처드 앤더슨, 데이비드 피어슨, 배락 로젠사인, 조지 맥콘키, 로버트 린 교수 등 독서 교육, 작문 교육, 교수학습, 연구 방법 분야 등을 전공한, 미국 내 일류급의 교수진이 포진하고 있었다.

제효 선생님께서는 낚시를 무척 즐기셨다. 제효 선생님 생각을 하면 나는 4월 클린턴 호수의 은빛 물고기 크래피 생각에 가슴 조이는 전율을 느낀다. 클린턴 호수는 미국 일리노이주의 쌍둥이 도시이자 일리노이 대학이 자리 잡고 있는, 인구 10만 정도의 도시인 어배나 샘페인에서 10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1시간 정도 자동차로 달리면 만날 수 있는 이십 여 평방킬로미터 크기의 호수이다. 클린턴 호수는 낚시하기, 보트타기, 등산하기, 캠핑하기, 사냥하기 등의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주립 공원이다.

1980년대 초 4월의 토요일이 되면 나는 늘 새벽 4시경에 집사람과 아이들을 깨워서는 클린턴 호수로 낚시를 가곤 하였다. 동이 채 트기 전의 클린턴 호수는 늘 포근한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아무도 없는 주차장에 주차를 한 다음 우리 네 식구는 매우 숙련된 방식으로 고기가 잘 잡히는 골짜기에 서둘러 자리를 잡았었다. 네 개의 낚싯대를 사용하여 각자 부지런히 크래피를 잡아 올리면 두 시간이 채 되지 않아서 50리터 크기의 아이스박스를 크래피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아이스박스가 가득 차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 촌 뒤편의 드넓은 잔디밭 가에 있는 철조망에다 부지런한 내자가 깨끗이 손질한 크래피를 주렁주렁 걸어서 따뜻한 햇볕에 말리곤 하였다. 잘 마른 크래피는 우리 한인 유학생들에게 있어서 값비싼 영광굴비 못지않은 최고급 반찬이었다.

나는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의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873월에 문교부 장학편수실로 복직하게 되었다. 학문적 성취를 목표로 하는 나로서는 중앙 행정 기관에 근무한다는 것이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제효 선생님께서는 나의 딱한 사정을 잘 이해하시어서 여러 군데 자리를 주선해 주셨지만 뜻하신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아마도 큰 걸림돌이 내가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교육심리학과에서 학위를 취득하였다는 데 있었던 같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 교육심리학과와는 달리 내가 일리노이 대학의 교육심리학과에서 수강한 과목의 대부분은 독서이론과 독서교육, 작문이론과 작문교육, 연구 방법론 등에 관한 과목이었으며, 나의 박사학위 논문은 작문 과제가 작문 수행 능력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논문이었기 때문에 전공 상치라고 일방적으로 치지도외(置之度外)하는 풍토가 몹시 서운하기도 하였다. 오죽하면 제효 선생님께서 나보고 서울대 박사 과정에 다시 입학하라고 하셨겠는가.

나는 젊은 시절 영훈중학교에 근무하면서 이대규 선생님으로부터 노자를 소개받아 공부하였고, 문교부 장학실에 근무하면서 김상대 선생님으로부터 볼노의 현상학을 소개받아 공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제효 선생님의 학문에 대한 깊은 열정과 연구 방법에 관한 심오한 이론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만 집착하였다. 노자는 일찍이 크게 완성되어 있는 것은 흠결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아무리 써도 폐단이 없으며, 참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언뜻 비어 있는 듯 보이나 쓰기에 부족함이 없다.(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나는 제효 선생님의 그 크고도 깊은 뜻을 찬찬히 되새기면서 남은 학문 생활을 최선을 다하여 버텨 나가고 싶다.  

*이 글은 제효 이용주 선생 추모 문집 '한국어의 의미 새벽을 열다' (2010년 5월, 한국문화사)에 게재된 글임.

 

 

 

올곧음 비켜가기

                                                                     박영목(朴泳穆) (홍익대 명예교수, 23)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정보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에 맞추어 변용되기 마련이다. 해암 김형규 선생님에 대한 나의 기억은 흐릿하고 왜곡되어 어느 것 하나 정확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올곧은 학자요 스승으로서의 해암 선생님에 대한 정보는 나의 머릿속에 뚜렷하게 저장되어 있다고 믿고 싶다. 나는 해암 선생님의 그 올곧음을 제대로 본받지 못하고 늘 비켜가는 삶을 살아 왔기에 참으로 부끄럽기 한이 없다.

내가 해암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19663월 초였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우리들에게 해암 선생님은 참으로 근엄하시고도 인자하신 모습으로 인식되었다. 19663월 입학 후 어느 봄날에 우리 국어교육과 교수님들을 모시고 찍은 사진을 보면 이두현 선생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김은전, 이응백, 이하윤, 김형규, 이용주 선생님들께서 앉아 계신다. 흐릿한 사진 속의 해암 선생님 모습에서 지금도 나는 인자함과 온유함과 강인함을 두루 갖춘 성품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대학 3학년 2학기 성적표를 받아보고 나는 몹시도 난감해 한 적이 있다. 해암 선생님 과목을 수강하면서 내 나름으로는 열심히 공부하였는데 성적이 아예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 마침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내 절친한 학우 김희락 학형과 함께 종암동에 있는 2층 양옥의 해암 선생님 댁을 찾아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앞뒤 사정을 말씀 드렸더니 해암 선생님께서는 나를 따뜻하게 위로하시면서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하시었다. 그리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시어서 늘 들고 다니시던 가방의 어느 모퉁이에 따로 보관되어 있는 나의 시험 답안지를 찾아내시고는 문제가 해결되었다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때 내 마음 속에는 은근히 해암 선생님을 원망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학생의 편에 서서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고 문제가 해결되면 함께 기뻐하는 그런 교수의 모양새를 도저히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해암 선생님께 대하여 부끄럽고 송구하기 그지없다.

1969년도에 청량원에서 사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논문 현상 모집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제출한 국어 용언 어간에 대한 형태론적 시고라는 졸작이 가작으로 뽑히어서 상금을 탄 적이 있다. 나는 내가 운이 좋아서 그리고 좋은 논문을 작성하여서 상금을 타게 된 줄 알고는 그 상금으로 친구들과 함께 기고만장하여 상당한 주연을 즐긴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입상을 하게 된 까닭은 심사를 맡으셨던 해암 선생님께서 내 논문의 질에 비해 과분하게 후한 점수를 주신 데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효제 이용주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올바른 제자라면 당연히 해암 선생님을 찾아뵙고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리 부끄러웠던지 나는 선생님을 피해 다니기만 하였다.

내가 대학 4학년 때인 1969년도에 우리 국어교육과 4학년 학생들은 해암 선생님을 모시고 오대산 방면으로 졸업여행을 갔었다. 그 당시 해암 선생님은 예순에 가까운 연세에도 불구하고 한창 나이의 우리들보다 산행을 더 잘하셨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더구나 해암 선생님께서는 밤을 거의 새우면서 조금도 흐트러짐도 없이 우리들과 함께 머루주를 드시면서 제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당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해암 선생님께서는 불철주야로 학문에 정진하시면서도 건강 관리를 잘 하셨던 같다. 나는 해암 선생님의 그 근면하심과 성실하심을 조금도 본받지 못하고 내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좀 더 노력해야지 하는 다짐만 가끔씩 하다가 제대로 노력 한번 못해 보고 벌써 예순의 나이에 이르게 되었으니 해암 선생님의 제자로서 매우 부끄럽고 송구하기 짝이 없다.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국어 교사직을 그만 두고 최현섭 선배님의 주선으로 19784월부터 문교부 국어심의회 상근 전문위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내가 석사과정에서 졸업 논문으로 '국어 사동사와 피동사의 의미 구조'라는 국어학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것은 해암 선생님과 효제 선생님의 훌륭한 가르침 덕분이었다. 국어심의회 전문위원으로 일하면서 나는 국어 어문 규정 초안을 작성하는 실무 작업을 일 년가량 하였다. 그리고는 당시 문교부 장학편수실장으로 계셨던 김상준 선배님의 배려로 19795월부터 문교부 교육연구장학관실의 교육연구사로 발령을 받아 일을 하였다. 이 때 내가 한 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교육평가와 통계를 공부해 가면서 고교 성적 내신제 관리 지침을 마련한 일과 ‘7 30 교육개혁조치에 따른 학교교육 정상화 방안의 추진 과정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1983년부터 4년가량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1987년에 복직하여 문교부 인문과학편수관실에 일하게 되었다.

국어심의회 전문위원 경력으로 인하여 인문과학편수관실에서 내가 맡은 일 중의 하나는 바로 한글 맞춤법개정안을 확정하여 고시하는 일이었다. ‘표준어 규정관련 업무는 인문과학편수관실의 교육연구관으로 계셨던 정준섭 선배님께서 맡으셨다. 이 무렵에 나는 내가 맡은 업무 때문에 해암 선생님을 자주 뵙게 되었다. 그 당시 해암 선생님께서는 문교부 산하기관인 국어연구소의 소장으로 계시면서 국어 어문 규정 개정안을 마련하는 일의 책임을 지고 계셨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 맞춤법 규정이 옛날 규정에 비해 개선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해암 선생님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라고 나는 지금도 단호하게 믿는다.

국어심의회 한글 맞춤법 분과위원회의 간사를 맡고 있던 나는 해암 선생님께서 심의위원들을 상대로 참으로 진지하게 설명도 하시고 설득도 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 당시 해암 선생님께서 강력하게 주장하셨던 개선안 중의 하나는 이오시오의 표기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선생님께서는 현실음을 고려하여 이요시요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그러나 심의위원들의 다수는 선생님의 주장에 대하여 반대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타협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지금의 한글맞춤법 규정인데, ‘이고에 대응되는 이오이요로 표기하고 시오는 원래대로 시오로 표기하는 방안이었다.

이러한 타협안에 대하여 해암 선생님께서는 그 부당함을 주장하시면서 국어연구소의 원안대로 통과시킬 것을 한글맞춤법 분과 심의위원들을 상대로 참으로 의연하고도 당당하게 설파하셨다. 나는 해암 선생님의 제자로서 당연히 심의위원들을 상대로 해암 선생님 주장의 타당성을 설득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문 규정의 기한 내 고시라는 정책 일정에 충실하기 위해 해암 선생님의 그 의연하고도 올곧은 주장이 실현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지 못하고 슬그머니 외면한 내 행태가 나는 너무나 부끄럽고 송구할 따름이다.

해암 선생님께서 타계하신 지 벌써 십년이 지났다. 훌륭한 스승으로서 선생님께서 우리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던 그 온화함과 의젓함과 올곧음은 우리 제자들의 가슴 속에서 언제나 살아 숨 쉴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개과천선하여 내 제자들에게 올곧은 스승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앞으로 남은 기간이나마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하겠다.  

*이 글은 해암 김형규 선생 추모 문집 '스승의 향기' (2007년 10월, 한국문화사)에 게재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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