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교육의 효과
朴泳穆 (국어교육과 23회, 홍익대 명예교수)
Ⅰ
난대 이응백 선생님께서는 한자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과 철학을 지니신 분이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 실시와 국어 교과서에서의 한자 혼용 표기를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셨다. 난대 선생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학교교육이 기초 기본을 다져 그것을 사용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 생각할 때 국어 학습에서 한자야말로 절대적인 기초가 되는 것이며, 더구나 동양 문화권에서의 한자의 위치를 고려할 때 그것을 외면함으로써 초래되는 국제적 고립화는 중대한 국가적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셨다.
해방 직후는 초등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까지 한자를 사용하다가 ‘초등 국어 교본’이 ‘초등 국어’로 바뀌면서 3학년 이하에서는 한자를 제거했었다. 그러다가 1964년 9월부터 1970년 3월까지는 초등학교 4학년 이상에 한자를 노출 혼용하였다. 그러던 것이 1970년 3월부터 1975년 2월까지는 고전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든 국어 교과서에서 한자를 모두 제거했었다. 그러다가 1975년 3월부터는 중학교 이상 국어 교과서에서 한자를 병용하여 현재에 이르렀다1) . 난대 선생님께서는 ‘한자를 교과서에 적절히 섞음으로써 문면이 입체화하여 읽기 쉽고 뜻이 분명하게 파악되는 장점을 지니고 있으니 그것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활용하는 것은 우리 어문의 질, 나아가서는 교육 전체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기 때문에 한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국어 교과서에는 노출 혼용하고, 다른 교과서에는 당분간 괄호 속에 사용해야 한다.’는 건의를 교육 정책 당국에 끊임없이 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한자교육의 효과와 연관되는 정책 연구를 다섯 차례에 걸쳐 수행하였다. 이들 연구 중에서 한 건의 연구에는 공동연구원의 자격으로 참여하였고2), 네 건의 연구에서는 연구책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난대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내가 연구책임자로서 연구를 수행하였던 네 건의 연구 결과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Ⅱ.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에 대한 선호도 조사 연구
본 연구3)의 설문 조사는 서울, 춘천, 청주, 광주, 부산의 5개 지역에 있는 학교를 한국겨육개발원 국어교육연구실 연구원이 직접 방문하여 실시하였다. 설문 조사를 담당한 연구원은 각 지역별로 2명씩 편성되었는데, 담당 연구원은 각 지역의 대학교 1개교, 고등학교 2개교, 초등학교 2 개교를 직접 방문하여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다. 설문 조사를 실시하기 전에 문교부에서는 조사 협조 요청 공문을 해당 교육위원회에 발송하였고, 연구원이 학교를 방문할 때에는 한구교육개발원의 협조 요청 공문을 지참하고 갔으며, 해당 학교에서는 이번 조사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었다. 각 지역별로 회수된 설문지 2884개는 연구자에 의한 검색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설문 문항의 항목에 대하여 두 가지 이상 반응한 설문지는 분석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에 관한 한국교육개발원 장기 연구 과제의 제2차년도(1989년) 연구에 해당하는 이 연구의 목적은 주로 교육적 측면에서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에 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선호도를 설문지 조사를 통하여 파악하는 데 있었다.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에 대한 선호도 조사 결과는 표기 형태에 따른 독서 및 작문의 실태, 한자 교육의 필요성 및 유용도, 한자 교육의 실시 시기 및 방법, 교과서의 표기 방법, 표기 정책 등 다섯 가지 측면에서 분석되었는데, 그 결과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상의 문자 생활에서 고등학생 및 대학생 집단은 한글 전용 표기 형태의 글을 주로 읽으며, 학부모 및 교사 집단은 한자 혼용 표기 형태의 글을 주로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연령이 높을수록 한자 혼용 표기 형태의 글을 선호하고, 연령이 낮을수록 한글 전용 표기 형태의 글을 선호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한글 전용의 확대 및 한자 사용 비율의 점진적 축소라는 일반적인 추세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자 혼용 표기 형태의 글에 대한 선호도는 학력이 높을수록, 글을 읽거나 써야 할 일이 많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한자 실력이 높은 수준에 있다고 인식하는 집단일수록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여자 집단에 비해 남자 집단의 경우가 한자 혼용 표기 형태의 글을 더욱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에서의 한자 교육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는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자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는 설문 대상 집단의 성격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났다. 학생 집단은 학부모 및 교사 집단에 비해 한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반응한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으며, 연령층이 낮은 집단일수록 연령층이 높은 집단에 비해 한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반응한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학교에서의 한자 교육이 일상생활에서 글을 읽고 쓰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느냐는 문제와 관련하여 학부모 및 교사 집단에서는 매우 도움이 된다고 반응한 비율이 가장 높은 반면에 고교생 및 대학생 집단에서 약간 도움이 된다고 반응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러한 결과는 한글 전용 표기 형태의 글을 선호하는 집단일수록 한자 교육의 유용성에 대한 인식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한자 교육의 유용도에 대한 인식은 연령층이 낮은 집단일수록 그리고 학력이 낮은 집단일수록 낮게 나타났다.
학교에서의 한자 교육 실시 시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실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비교적 많았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의 실시 시기 중 에서 학생 집단에서는 주로 중학교 1학년 때 부터 실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으며, 학부모 및 교사 집단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실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초등학교에서의 한자 교육 실시 방법과 관련하여 초등학교 학생들의 대부분은 정규 교과 시간 이외의 특활 시간 또는 자습 시간과 같은 특정 시간을 이용한 한자 학습 방법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교과서 표기는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학년의 교과목은 한자를 병기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으며, 한글 전용 표기로 하자는 의견이 두 번째로 많았다. 중학교 교과서 표기에 대하여는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하되 , 필요한 학년의 교과목은 한자를 병기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으며, 한자 병기를 원칙으로 하자 는 의견이 두 번째로 많았다. 고등학교 교과서 표기는 한자 병기를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학년의 교과목은 한자를 혼용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으며,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학년 의 교과목은 한자를 병기하자는 의견이 두 번째로 많았다.
각종 인쇄물에 대한 표기 정책은 필요에 따라 한글 전용이나 한자 혼용으로 하도록 자율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과 한글 전용을 적극 권장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한자에 대한 친숙도 및 경험의 정도가 높은 집단일수록 자율에 맡기는 방안에 대한 반응 비율이 높았으며, 그 정도가 낮은 집단일수록 한글 전용 권장 방안에 대한 반응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한글 전용 표기와 한자 혼용 표기에 대한 선호도 조사 연구의 결과가 시사해 주 는 바는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첫째, 한글 전용 표기와 한자 혼용 표기와 관련된 어문 교육 정책을 수립할 때에 는 다양한 집단의 요구를 폭넓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무릇 모든 교육 정책이 그러하듯이, 한글 전용 표기와 한자 혼용 표기와 관련된 어문 교육 정책은 이념적 측면, 사회적 측면, 교육적 측면 등과 관련된 여러 가지 변인들의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분석을 토대로 수립해야 할 것이다.
Ⅲ. 한글 전용 표기와 한자 혼용 표기가 독서 과정에 미치는 효과 실험 연구
본 연구4)는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에 관한 한국교육개발원 장기 연구 과제의 제3차년도(1990년) 연구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한글 전용 표기와 한자 혼용 표기가 독서 과정에 미치는 효과를 검증 하는 데 목적을 두고, 단어 인식 실험, 읽기 시간 실험, 문장 재인 실험, 단어 재인 실험, 텍스트 요약 실험을 실시하였다. 실험의 결과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단어 인식 실험을 위해 서울 시내 소재 1개 대학의 3학년 이상 학생들 중에서 전공 영역을 고려하여 50 명의 피험자를 모집하였다. 실험의 자극 자료로서 사용된 단어는 중학교,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사용된 한자어를 대상으로 하였다.피험자들에게 실시한 한자 지식 검사지는 예비검사를 거쳐 신뢰도와 타당도 검증을 마쳤다. 각 피험자는 개인별로 미리 약속된 시간에 실험실에 와서 실험에 참여하였다. 실험에 참여한 피험자들에게는 각각 소정의 실험 참여 수당이 지급되었으며, 실험은 연세대 심리학과의 심리실험실을 이용하였다. 실험에 사용된 장치 및 도구는Tachistoscope, Random-access Projector, Drivers, Ordinal Projector, Screen, Micro-computer 등이었다.
단어 인식에 있어, 한글 표기 단어가 한자 표기 단어보다 동일한 조건에서 정확도가 높게 나타났다. 단어 인식에 있어 동일한 조건에서 한자 친숙 집단이 한자 비친숙 집단에 비해 정확도가 높게 나타났다. 단어 인식의 정확도는 노출 시간역이 길어짐에 비례하여 증가하였다. 한자 표기 단어는 한글 표기 단어에 비하여 긴 노출 시간역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글 표기 단어는 26msc에서 93%의 정확도를 보인 데 반해 한자 표기 단어는 42msc에서 68.7%의 정확도를 보였다.
읽기 시간에 있어 한자 혼용 표기가 한글 전용 표기보다 읽는 데 시간이 더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자 지식의 정도가 읽기 시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한자 친숙 집단과 한자 비친숙 집단은 읽기 시간에 있어 의의 있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문장의 길이가 길고 내용 구조가 복잡할수록 읽기 시간이 길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글 전용 표기에 대한 집단 간의 읽기 시간의 차는 미미하고 통계적으로도 의의있게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반해 한자 혼용 표기 에 대한 읽기 시간은 한자 친숙 집단이 현저히 짧았다. 그리고 한자 혼용 표기에 대한 집단 간 읽기 시간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의의있게 나타났다.
문장 재인 실험에 있어 한자 혼용 표기 문장에 대한 재인율이 한글 전용 표기 문장에 대한 재인율보다 높게 나타났다. 한자 지식의 정도는 문장 재인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자 혼용 표기 문장과 한글 전용 표기 문장에 대한 집단 간의 재인율의 차이는 의의있게 나타나지 않았다. 즉 표기 형태에 관계없이 한자 지식의 정도는 문장 재인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어 재인 실험에 있어 한자 표기 단어에 대한 재인율이 한글 표기 단어에 대한 재인율보다 높게 나타났다.단어 재인율에 있어 한자 친숙 집단과 한자 비친숙 집단 간에 의의있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자 비친숙 집단에서는 한글 표기 단어에 비해 한자 표기 단어 재인율이 훨씬 높게 나타났고, 이는 통계적으로도 의의있게 나타났다. 그러나 한자 친숙 집단에서의 각 표기 형태에 대한 재인율의 차이 및 각 표기 형태에 대한 집단 간 재인율의 차이는 의의 있게 나타나지 않았다.
텍스트 요약 실험에서 표기 형태에 따른 내용 이해도의 차이나 집단에 따른 내용 이해도의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각 집단 내에서 표기 형태별 이해도의 차이도 의의있게 나타나지 않았으며, 각 표기 형태에 대한 집 단 간의 이해도의 차이도 의의있게 나타나지 않았다.
본 연구의 실험 결과를 통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첫째, 대상 독자가 학교 교육을 통해 한자 교육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받은 대학생 집단이고, 단어 인식 과정에서 해당 단어에 대한 의미 표상의 단계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지 않는 상태에서 성인 독자는 한글로 표기된 단어를 한자로 표기된 단어보다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둘째, 대상 독자가 대학생 집단이고, 내용의 이해 및 기억에 독서의 목적이 있는 경우, 성인 독자는 한글 전용 표기 문장을 한자 혼용 표기 문장보다 빨리 읽을 수 있다. 셋째, 읽기 시간이 동일하게 통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어진 문장을 가능한 한 빨리 읽고 나서 일정 시간이 경과한 다음 읽은 문장을 재인할 경우, 성인 독자는 한글 전용 표기 문장보다 한자 혼용 표기 문장을 더욱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넷째, 대상 독자가 배경 지식이 유사한 대학생 집단이고, 내용의 이해 및 기억에 독 목적을 두고, 읽기 시간을 동일하게 통제했을 때, 성인 독자는 한글 전용 텍스트 중에 있는 한글 표기 단어보다 한자 혼용 텍스트 중에 있는 한자 표기 단어를 더욱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다섯째, 성인 독자는 텍스트의 내용을 요약하는 데서는 표기 형태에 따른 의의있는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위의 시사점을 토대로 한글 전용 표기와 한자 혼용 표기 형태는 독서 과정 중 단어 인식, 단어 재인 등 하위 과정에서는 통계적으로 의의있는 차이를 보이지만, 텍스트의 내용을 이해하고 요약하는 상위 과정에서는 차이가 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Ⅳ.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이 국어능력에 미치는 효과 실험 연구
초등학교에서의 한자 교육이 국어 능력에 미치는 효과를 검증하기 위하여 본 연구5)에서는 다음과 같이 현장 실험 연구를 실시하였다. 실험 대상은 인천 소재 교육부 지정 연구학교인 간석 초등학교에서 3학년 5학년 두 개 학년 에서 각각 4개반을 무선으로 표집하여 실험반 4개반(3학년 5학년 각 2개반) 통제반 4개반(3학년 5학년 각 2개반)을 운영하였다. 본 연구에서의 공식적인 실험은 1991년 4월 29일부터 10주간에 걸쳐 수행되었다. 이 10 주간의 실험 기간 동안 연구자가 개발한 교사용·학생용 자료가 실험반, 통제반에서 사용되었고 연구자의 관찰 면담이 이루어졌다. 공식적인 실험이 1학기 말에 종료된 후, 2학기 동안에도 1학기 실험에 준하여 실험 학교 자체에서의 실험 연구가 계속되었다.
공식적인 실험에 쓰인 실험용 자료 중에서 학생용 자료로는 실험반의 교과서와 어휘 학습 프로그램, 통제반의 교과서와 어휘 학습 프로그램 등이 사용되었고, 교사용 자료로는 실험반과 통제반 각각의 교사용 지도서가 사용되었다. 실험 기간 동안 실험반 학생들은 한자 혼용 표기의 읽기 교과서를 사용하였다. 이 교과서는 기존의 읽기 교과서 단원 중 실험 기간 동안 학습하게 되는 10개 단원을 한자 혼용 표기로 만든 것이다. 본 연구에서 연구자가 개발한 어휘 학습 프로그램이 학생들에게 매 단원 가정 학습 과제로 부과되었다. 실험 기간 동안 통제반 학생들은 별도의 실험용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고 기존의 읽기 교과서를 그대로 사용하였다.본 연구의 실험 결과를 검증하기 위하여 연구자는 3회에 걸쳐 검사를 실시하였다(사전 검사 1회, 사후 검사 2회). 사용된 검사지는 모두 16종으로서 연구자가 개발하여 국어교육 전문가, 한자교육 전문가, 현장 교사와의 검토 협의를 거쳐 확정되었다.
본 연구는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에 관한 장기 연구 과제의 제4차년도(1991년) 연구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실시했을 때 국어 능력(읽기 능력, 쓰기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증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4월 29일부터 시작된 실험용 자료의 투입 결과를 검증하기 위하여 사전 검사와 제1회 사후 검사와 제2회 사후 검사를 실시하였다. 검사의 결과를 중심으로 실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휘력에 있어 3학년은 통제반이 실험반보다 높은 점수를 보였고, 5학년은 실험반, 통제반 사이에 의의있는 차이가 없었다. 이는 한자를 이용한 어휘 학습이 한자 지식이 거의 없는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3회에서 보인 실험반과 통제반 사이의 근소한 차이로 보아, 한자의 학습이 장기간 계속될 경우 실험반과 통제반 사이의 어휘력 차이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 이해력에 있어 3학년과 5학년 모두 집단 간에 의의있는 차이가 없었다. 이로 보아 한자 교육 유무나 의도적인 어휘 지도 프로그램의 투입 여부가 내용 이해력의 향상에 상대적으로 적은 영향밖에 미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실험용 자료의 투입으로 현격히 증가된 어휘력이 내 용 이해력의 신장에 직결되지 못한 것은 내용 이해를 위해 동원되어야 할 기능은 어휘력 이외에도 여러 가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읽기 능력에 있어 3학년의 경우 집단 간에 의의있는 차이가 있었다. 1회, 2회 검사에서는 통제반이 의의있게 높았으나 3회 검사에서는 집단 간에 차이가 없어졌다. 이로 보아 시간 이 경과했을 때 한자 교육 집단이 비한자 교육 집단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읽기 능력이 신장되는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본 연구의 실험 기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5학년의 경우 집단 간에 의의있는 차이가 3회에 걸친 검사 및 3회에 걸친 검사 의 평균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문장 수준의 쓰기 능력에 있어 3학년, 5학년 모두 시간에 따라 문장 수준의 쓰기 능력이 변화하는 양상이 집단 간에 차이가 없었다. 한자를 이용한 어휘 지도거나 한자를 이용하지 않은 어휘 지도거나 간에 제한된 양의 어휘 지도가 문장 수준의 쓰기 능력 신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텍스트 수준의 쓰기 능력에 있어 문장 수준에서의 쓰기 능력과 마찬가지로 3학년, 5학년에서 집단 간에 의의있는 차이가 없었다.
본 연구는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실시된 것으로서 초등학교에서의 한자 교육의 효과에 대해 제한된 결과만을 얻을 수 있었다.지금까지 본 연구부에서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결과를 살펴보면 양측 주장 중 어느 한편의 주장은 옳고 어느 한편의 주장은 틀렸다고 하는 이분법적 결론은 불가능하다. 초등학교에서의 한자 교육 여부로 초점이 모아진 이 논쟁이 쉽게 결말이 날 수 없음은 이 문제가 진위나 선악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선 가운데 최선을 택해야 하는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본 연구의 실험 결과를 통해 현재와 같은 국어 교과의 구조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교과서를 한자 혼용으로 표기하고, 국어 시간에 한자를 지도하는 것은 국어 교과에서 길러주고자 하는 언어 사용 기능의 신장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의 한자 교육이 읽기 능력 및 쓰기 능력에 미치는 효과가 짧은 시간 내에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것을 시사받을 수 있다. 읽기 능력 및 쓰기 능력은 여러 가지 유형의 지식과 기능들의 복합적인 상호 작용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한자와 관련되는 특정의 지식 요인을 갖추었다고 해서 읽기 능력 및 쓰기 능력의 신장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Ⅴ. 초등학교 한자교육 프로그램의 교육 효과 검증 연구
초등학교 한자교육 프로그램의 교육 효과 검증을 위하여 본 연구6)에서 실험반 학생들에게는 한자교육 프로그램을 투입하고 통제반 학생들에게는 별도의 어휘교육 프로그램을 투입하였다. 실험 대상 학생은 춘천교대 부속초등학교 3학년 2 개 반과 5학년 2 개 반 모두 118명이었다. 한자교육 프로그램과 어휘지도 프로그램을 투입하기 전인 2003년 8월 22일 실험반과 통제반 학생을 대상으로 사전 검사를 실시하였다. 한자교육 프로그램과 어휘지도 프로그램 투입 기간은 2003년 8월 말에서 11월 중순까지 10주간이었다.
한자교육 프로그램 투입이 어휘력 신장에 미치는 효과는 3학년과 5학년 모두 한자를 이용하여 어휘지도를 하는 방법에 비하여 한자를 이용하지 않고 어휘 지도를 하는 방법이 단기간의 어휘력 신장에 더욱 효과적으로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자교육 프로그램을 장기간 투입할 경우에는 어휘력 신장에 미치는 효과가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한자교육 프로그램 투입이 내용 이해력 신장에 미치는 효과는 3학년과 5 학년 모두 단기적 효과 면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한자를 이용한 단기간의 어휘 학습이 내용 이해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내용 이해력을 구성하는 요인에는 어휘력 외에도 글의 내용과 구조에 관한 배경지식과 함께 학생들의 독해전략 등 중요한 요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한자교육 프로그램 투입이 어휘 활용 능력 신장에 미치는 효과는 3학년과 5학년 모두 단기적 효과 면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한자를 이용한 단기간의 어휘 학습이 한자를 이용하지 않은 어휘 학습에 비하여 학생들의 문장 수준 쓰기에서의 어휘 활용 능력 신장에 크게 기여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해석된다. 한자를 이용한 단기간의 어휘 학습이 학생들의 어휘력 신장에 미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장 수준의 쓰기 능력 신장에 영향을 미치기는 사실상 어렵기 때문 이다.
한자교육 프로그램 투입이 문단 수준 쓰기 능력 신장에 미치는 효과는 집단별 검사별로 일관성 있게 나타났다. 3학년과 5학년 사후검사의 경우 통제집단의 문단 수준의 쓰기 능력 점수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 난 것은 사후 검사문항의 특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결과는 한자를 이용한 단기간의 어휘 학습이 한자를 이용하지 않은 어휘 학습에 비하여 학생들의 문단 수준의 쓰기 능력 신장에 크게 기여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해석된다. 한자를 이용한 단기간의 어휘 학습이 학생들의 어휘력 신장에 미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 단 수준의 쓰기 능력 신장에 영향을 미치기는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Ⅵ
국어 어휘의 상당 부분은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한자교육의 문제는 어휘력 신장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독해 능력과 작문 능력의 신장을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어휘력의 신장은 국어교육뿐만 아니라 다른 교과의 교육에서도 가장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과제이다. 어휘력은 이해 능력과 표현 능력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어휘력은 독해 능력의 기초가 된다. 일반적으로 어휘 지식은 독해 점수 변인의 80% 정도를 설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초등학교 1학 년 때의 어휘력 검사 점수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독해력 점수의 30%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독서 활동과 연관하여 바람직한 문식적 환경에서 성장한 학생들은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 비해 어휘의 양적 측면에서 다섯 배에 달하는 어휘를 습득한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하여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에 관한 합리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 실시 문제는 옳고 그르고의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교육 효과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어 교과에서의 한자 지도는 어휘력 신장 교육의 일환으로 실시되도록 초등학교 한자교육 정책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초등학교 한지지도의 적용 범위를 다양화 하는 방향으로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정책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넷째, 초등학교에서의 효과적인 한자지도 방법을 다양하고도 풍부하게 개발하여 보급하는 일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정책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은 3학년부터 실시하는 방안을 정책 방향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한자교육의 실시에 대한 입장의 차이에 따라 한자교육의 효과에 대한 의견이 다를 수는 있겠으나, 한자교육의 실시 방법에 따라 한자 교육은 효과적인 어휘력 신장을 위한 수단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초등학교 한자교육 문제의 합리적 해결을 위한 접근 방안을 간단히 정리하여 제시해 보기로 한다. 첫째, 한자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대안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한자교육의 적용 범위를 명확하게 결정해야 한다. 둘째, 한자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대안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한자교육의 적용 대상을 합리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 한자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대안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한자교육의 적용 범위와 적용 대상에 적합한 효과적인 지도 방법이 개발되어야 한다. 넷째, 한자교육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최선의 지도 모형과 지도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 다섯째, 한자교육과 관련된 정부 정책을 합리적으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한자교육과 관련되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장기적이며 종단적인 실험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의 문제는 이념적 측면, 사회적 측면, 언어적 측면, 교육적 측면 등 여러 면에 걸쳐 관련된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연구나 정책 결정에서는 관련되는 다양한 측면에 대한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연구와 검토가 체계적이고도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자교육의 효과에 대하여 지금까지 내가 수행한 연구들은 하나같이 단편적이고 단기적인 연구들로서 연구 결과를 일반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연구들이다. 절차탁마의 정신으로 연구 역량을 최대한 함양하여 제대로 된 연구 결과를 난대 선생님께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쉽고 죄송하다.
*이 글은 난대 이응백 선생 추모 문집 '국어교육의 큰 스승'(2015년 12월, 한국문화사)에 게재된 글임.